하루에 길게는 열두 시간 이상을 머무르게 되는 회사라는 곳은 업무를 위한 공간이지만 그 자체로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좋든 싫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 꽤나 흥미롭다. 이 작은 조직에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더 작은 책상에 앉아 관찰하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회사원들의 관찰기를 남겨본다.
1.
유 차장은 늘 젠틀하고, 대부분 미소를 짓고 있다. 전화예절도 바르고 말투도 정중하다. 늘 먼저 출근해 있으며, 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나는 유 차장이 일어나 있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자리는 늘 단정히 정돈되어 있다.기지개를 켜거나 하품을 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아침 근무 전에는 늘 따뜻한 차를 두고 음미하며, 점심 식후에는 반드시 영양제를 몇 알 골라 삼킨다. 유 차장은 마치 잘 프로그래밍된 AI 회사원같다.
2.
김 과장의 책상에는 없는 게 없다. 각종 사무용품, 생필품부터 주전부리까지 그득그득하다. 그중 가장 주목할 점은 거의 모든 상비약이 구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농반진반으로 '김 약사'라고 부를 정도. 속이 안 좋다고 하면 카베진을 몇 알 내어주었고, 생리통으로 괴로워하면 카모마일 티백과 함께 이브퀵을 처방(?) 해 주었다. 대일밴드나 게보린 같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어디가 아프다 하면 김 과장에게 달려가는 게 국룰이다.
3.
또 다른 김 과장은 대단한 육식파다. 오전 출근을 하자마자 식단표를 클릭하고 고기반찬 여부를 확인한다. 고기반찬이면 싱긋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회사에 온 보람이 있어 보이는 웃음이다. 김 과장은 곧잘 농담도 해주었는데, 하루는 우울해하는 나에게 말했다. "이 대리야, 우울할 땐 오른발을 들어 '여보세요' 하는 상상을 해봐."라고 했다. 떨떠름해진 내가 "네?"라고 했더니, "안 웃을 줄 알았다. 그래도 기분이 우울하면 왼발을 들어 '누구세요?'라고 하는 거야." "ㅋㅋㅋ" 김 과장은 그런 사람이었다. 아참, 한량처럼만 비칠까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반전적이게도 김 과장은 회사의 핵심인재로서 최연소 팀장을 역임한 적이 있다.
4.
윤 대리는 얼핏 특징이 없는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인다.대체로 밝고 긍정적이다. 일을 할 때는 진지하고 깊게 생각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편이다. 말투는 공손하고 다소 느릿느릿하다. 그런 윤 대리는 업무 중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여 화나 짜증을 내는 유의 사람은 아니다. 다만 스트레스 상황에서 윤 대리는아주 천천히 독서대를 펴고,『논어 강설』을 읽는다. 한 장 한 장 천천히 흡수하듯이. 임팩트가 대단한 특징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