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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Jun 22. 2020

비낭만적 사내연애와 그 후의 일상

비낭만적이므로 비추

1.


Y와는 비밀 연애를 했다. 어느 순간 매일 같이 일하고 퇴근하고도 보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어느 날 Y가 고백하기를, 처음에는 나와 친해질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동기 중 하나가 나에게 관심이 있었는데, 친해져서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동기를 위미션을 수행했고, 그러다 나에게 마음이 생겨버렸다는 거다. 전후 사정도 모르고 여자친구가 되어버린 내가 묻기를, 그 동기에게는 뭐라 설명할 거냐고 했더니 Y는 딱 잘라 '말하지 않으면 된다'라고 했다. 그렇게 본의 아닌 비밀 연애를 해야 했던 것이다. 그때 그 공기마저 기억이 나는 건 크고 복합적인 실망감을 느껴서다. 동기에 대한 의리도, 여자친구에 대한 배려도 없었던 그날을 Y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예상했겠지만 오래지 않아 정리했다.


2.


신 대리의 소개로 J와 연애를 시작했다.  계절을 연애했다. 참 많이 좋아하고 행복했으며 또한 오해했다. 으레 그러하듯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회사의 규모가 커서 오며 가며 만날 일은 전혀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다만 문제는 저장된 사내 메신저 내용들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있던 흔적이었다. J와 나눈 메신저는 지워도 지워도 끝이 없었다. 게다가 원하면 언제든 이름을 검색해서 그의 온오프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잊을만하면 검색해보고, 잊을만하면 추억을 찾아내서 다시금 스스로에게 상처를 줬다. 저장되어 있는 메신저 대화들은 그 시간에 머물러 있었, 나는 혼자였다. 많이도 무너졌던 시간들이었다. 너무도 대낮에, 너무도 사무실에서의 일이었다.


Sure, why not?

Note) 제목은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차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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