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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Mar 24. 2022

코로나 이산가족

간간히 쓰는 육아일기

분명 공문에서 읽은 회사 방침은 그랬다. 


- 확진자 주변 2m 이내 에서 근무한 모든 인원은 곧바로 검사 및 재택근무로 전환할 것.

- 상기 검사자 2m 이내에 근무한 인원 역시 재택근무로 전환할 것.


공문 속 활자를 빈정대기라도 하는 듯 현실의 방침은 무척이나 판이했다.

그 결과 우리 팀 5명 중 5명이 확진되었고, 나는 코로나 이산가족이 되었다.


금요일 퇴근 후 키트가 두 줄로 반응하자 곧장 며칠 간의 행적이 머릿속에서 쏟아져 내렸다. 더 이상 확진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하지 않는다지만 셀프 역학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내가 뿜었을 바이러스의 영향권에 든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야만 했다. 셀프 역학조사 결과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남편, 친정엄마, 트레이너 선생님, 회사 사람들께 두 줄을 고백하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그들은 알겠다고 대답했고 양성이 확인된 나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단 한 명, 이 사실을 이해시킬 방법이 없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 딸이었다. 바이러스 검출이 거의 확실해서 너를 안아 줄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거듭했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로 울어댔다. 그녀는 이제 겨우 11개월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확진 후, 내 딸은 시댁으로 피난 아닌 피난을 가게 되었다. 어떻게든 한 지붕 아래에서 해결하고 싶었지만 엄마인 나 혼자 밖에서 옮아온 상황인지라 별다른 묘안이 없었다. 그녀가 아빠에게 안겨 집을 나서는 모습을 문 틈으로 지켜보다가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삽시간에 생이별을 당하고 있자니 자발적 대인기피를 해온 시간들이 억울했다. 논리적인 사고체계는 애초에도 부실했지만 와르르 무너져 내려서 애꿎은 회사 탓을 하게도 되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 다행히 딸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할아버지의 당근력(?)으로 딸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들도 많이 들여놓으셨고, 잘 먹고, 잘 자고 무엇보다 별다른 코로나 의심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보고 싶고 그립지만은 그래도 잘한 선택이라고 믿고 싶다.


100명만 확진되어도 벌벌 떨던 시절을 지나 확진자의 수가 로켓처럼 치솟고 몇십만 명이 그저 텍스트로만 읽히는 요즘이다. 오죽하면 주변에 확진자가 없다면 자신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란 말이 나오겠는가. 하지만 막상 몇십만 명의 확진자 중의 한 명이 되어보니 생경하고 당황스러웠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내 몸까지 침범했다는 생각에 모든 게 원망스러웠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모든 조건이 좋아서 나는 재택근무도 하고, 딸도 부모님께서 케어해 주실 수 있는 거구나 싶다.


작금의 모든 코로나 이산가족들이 하루속히 상봉하길 바라며,

마스크를 벗고 남편과 딸의 손을 나눠 잡고 집 앞 공원을 걷는 상상을 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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