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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쌤 Jan 23. 2022

김밥케이크

김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김밥을 떠올리면 뭔가 쓸쓸하기도 하고, 급히 먹는 음식 같은 생각이 들었다.


김밥을 가장 많이 먹었을 때가 대학교 때 과외를 가는 길에 혹은 과외가 끝나고 혼자 조용히 들어가 먹었던 음식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의 기호와는 별개로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나니 소풍을 갈 때마다 김밥을 싸야 한다. 


아이가 싸 가야 할 것은 한 줄 남짓이면 충분할 텐데, 쌀 때마다 터지고 꽉 말지 않아 내용물이 쏟아지고를 반복하니 한 다섯 줄 쯤 싸서 그나마 온전한 것만 모아 보내야 했다.


소풍은 왜 이리 자주도 돌아오는지, 몇 번을 싸도 늘지 않는 김밥 실력 덕분(?)에 옆 반 선생님께 특강을 듣기도 했다.



밥을 끝까지 싸지 말아라, 처음 시작할 때 잘 말아야 한다, 밥 양을 줄여라 등등 세부 강의를 듣고 심기일전하여 싸도 늘 그 모양이다.



참 한결같은 솜씨랄까.





그랬던 내가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고 4학년 1학년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계속 보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 점심 준비가 가장 힘들었다.


그 어린 친구들에게 불을 쓰라고 할 수도 없고

매일 시켜줄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던 그때,




날마다 6시에 일어나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가장 적당한 것이 그래도 김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여 질릴까 안에 넣는 것들을 돌려가며 이것저것 넣어 싸기 시작했다.

날마다 2-3달을 싸니 김밥 쌀 때, 이제 터지지 않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밥이 너무 되게 되어 잘 안 말아질 때도 있고, 또 어느 날은 밥이 너무 질어서 잘 안 잘릴 때도 있었지만

이것도 날마다 하니 늘긴 늘더라.





방학이 되어 아이들의 점심을 챙겨줄 때가 되니 또 만만하게 생각나는 것이 이 김밥.


4줄을 쌓아서 놓았더니 '엄마, 밥이 너무 적어 배고팠어'라는 아이들이다 보니

늘 한 솥 가득 밥을 하여 5-6줄씩은 싸서 놓는다.


6줄의 김밥을 쌓아놓으면 하나의 김밥 케이크.


이 많은 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다가도 잘 먹은 빈 그릇을 보면 또 기특하고 감사하다.






나에게 김밥은


코로나를....


둘이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또 감사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게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아이들의 겨울 방학도 끝나가고 3월이 되어서의 등교 사항도 그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지나갈 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하게 될 줄이야.



발전한 것이 그나마 이 정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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