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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쌤 Jan 24. 2022

어휘력 격차가 벌어지는 시기

우리는 따로 모국어의 단어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가르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며칠 전까지 ‘마마마’ 하더니 어느 날부터 ‘엄마’라고 말합니다. 그때부터 매일매일 새로운 단어를 하나씩 내뱉습니다. 일곱 살 전후로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지만 영어 단어를 외우듯이 단어를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15년 넘게 교실에 있었지만 영어 단어를 외우는 아이는 있어도 한글 단어를 외우는 아이는 보질 못했습니다. 모국어라 아기가 처음 말을 내뱉듯 자연스럽게 생활하면서 보고 들으며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단어의 뜻을 따로 익힌 적이 없는 아이들인데 자세히 보면 저학년 아이들도 어휘력 격차가 상당합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만 5세 아이들이 함께하는 교실에는 3세 수준 아이부터 8세 수준 아이까지가 함께 지낸다고 합니다. 연구는 만 5세, 한국 나이로는 7세 아이를 대상으로 하지만 초등 저학년 교실도 비슷합니다. 초1 교실에는 정서·지적·성장 수준이 5세인 아이부터 10세인 아이까지 함께 지내고 있는 셈입니다. 5년 격차가 나는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게 이상할 일입니다.



왜 이런 격차가 생긴 걸까요? 타고난 언어 능력일까요? 남모르게 어휘를 학습할 수 있도록 노력을 따로 한 걸까요? 지금 생긴 격차는 얼마나 더 벌어질까요? 우리는 이 격차를 어떤 방식으로 좁힐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의 어휘력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 분이 많을 겁니다. 대략이라도 알아야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아쉽게도 한국에는 한글 어휘를 평가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 등급화된 기준이 없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중 〈국어교육용 어휘와 한국어 교육용 어휘〉(김광해, 2003) 연구가 있습니다. 총 237,990개 어휘를 교육적 중요도에 따라 총 7등급으로 나눈 연구인데 이를 ㈜낱말에서 9등급 체계로 보완한 표를 소개하겠습니다.


1등급 개념에 등장하는 기초 어휘는 일상생활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어휘를 말합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사용하는 어휘 수준입니다. 초등학교 3~4학년에는 새로 배우는 어휘가 7,736개고 누적 어휘가 13,474개에 이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어휘가 4만 개가량으로 늘어나 있어야 합니다. 보통 성인이 사용하는 어휘가 2만 개에서 10만 개 사이입니다. 초등 고학년만 돼도 초급 성인 수준에 이르고, 중학생만 돼도 성인 평균 수준에 다다른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제 나이에 배워야 할 새로운 어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아이와 매일 부대끼는 부모라면 실감할 겁니다.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하루가 다르게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코로나19로 더욱 부각된 면도 있지만 ‘빈어증’ 세대라고 표현하기까지 합니다.



어휘력 문제는 저학년 시기에 숨겨져 있다 중학년 시기에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교과서를 읽을 때,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 평가지를 받아 풀 때, 글을 읽긴 읽는데 어휘의 뜻을 몰라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부쩍 늘어납니다. 교과서와 시험지에 등장하는 단어 뜻을 모르니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격차가 중학년 시기에 드러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3학년이 되면 교과서 종류와 양이 늘어나고 교과서에 담고 있는 내용 수준이 확연하게 올라갑니다. 저학년 교과서는 그림 비중이 크고 글자가 많지 않습니다. 1학년 교과서는 아이들의 한글 해독이 완벽하지 않다는 전제로 만들어지므로 글 비중이 낮을 뿐만 아니라 그림만 보고도 활동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2학년 교과서 역시 교과서 종류, 구성, 수준이 매우 비슷합니다. 그러다 3학년이 되면 사회, 과학, 음악, 미술 등 교과서 종류가 늘고 내용과 수준이 확 올라갑니다. 어휘 역시 2배 가까이 늘어 격차는 배로 벌어집니다.



둘째, 중학년 시기가 어휘력이 향상되는 결정적인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결정적 시기는 ‘특정 종류의 행동 및 체계를 습득할 가능성이 특별히 높은 기간’을 말합니다. 즉, 어휘력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효과적인 시기라는 말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 시기를 넘겨도 충분히 향상 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시기를 넘기면 더디고, 힘들고, 어려워집니다. 이 시기에 어휘를 제대로 습득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따라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즉, 어휘력을 향상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지만 어휘력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기 시기이기도 한 셈입니다.



어휘력은 문제없는데 남자 아이라 더뎌서, 12월생이라 늦돼서, 수줍음이 많아서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말이 아니라면 글로, 글이 아니면 그림으로, 또 다른 무엇으로 어떻게든 자신을 표현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지 않고 있다면 도구 즉, 어휘력이 부족한 탓이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REYoyvbvQ&list=PLrtdCQxF3j14H1dZviAJL4WqL5vYv9Zzx&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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