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온쌤 Jan 24. 2022

어휘력은 생각의 크기다.

중학교 영어 시간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meow meow‘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고양이는 “미야우~미야우”가 아니라 “야옹야옹”이라고 우는 데 말이죠. 어린 마음에 미국에 사는 고양이는 언어가 다른가보다 싶었습니다. 물론 그럴 리가 없지요. 다만 미국 사람은 고양이 울음 소리가 ’meow meow‘와 가장 비슷하게 들린다고 합니다. 같은 고양이 소리인데 왜 우리는 ‘야옹야옹’으로 들리고 미국 사람은 ‘meow meow’로 들릴까요?



이제 막 지어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슬고슬한 밥, 물기가 흐르는 진밥, 식어서 딱딱해진 밥, 이제 막 심은 모나 쌀알이 알알이 맺힌 벼, 쉰 밥, 가마솥에서 박박 긁어낸 누룽지, 이 모든 단어가 영어로는 ‘rice’입니다. 쌀이 주식인 우리나라에는 쌀과 관련된 어휘가 매우 다양하지만, 밀이 주식인 미국에서는 굳이 쌀을 여러 단어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거죠. 우리가 ‘된밥’이라는 말을 하면 미국 사람은 이 단어를 어떤 뜻으로 받아들일까요?



무지개 색깔도 우리는 일곱 가지로 규정하지만 실제로 일곱 색인 건 아닙니다. 무지개를 스펙트럼으로 통과시키면 207개 색깔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처럼 빨주노초파남보라고 말하는 순간 무지개 색이 일곱 색으로 보이는 겁니다. 지금까지 말한 건 언어가 사고를 제한한다는 사피워-워프 가설의 몇 가지 예입니다.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사고가 언어에 영향을 미치는지,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한 언어학자들의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언어와 사고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사고하고 우리가 생각한 부분을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언어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모르는 단어는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철학자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은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세계입니다. 나는 내가 경험하고 안 것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휘력의 부족은 비단 국어 능력의 문제가 아니고 삶의 질에 대한 문제이며,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의 크기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국어사전에는 약 50만 개 단어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 성인은 2만~10만 개 정도 어휘를 쓴다고 합니다. 단어를 2만 개 쓰는 사람과 10만 개를 쓰는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의 크기는 같을까요?



미국 빈민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은 단어를 1000개만 가지고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1000개만 알아서 어떻게 말을 하고 살지 싶다가도 일상 대화는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해외여행 갔을 때를 떠올려보면 매끄럽지는 않지만 필요한 말(예를 들면 안부, 의식주, 교통수단, 쇼핑에 관한 대화)은 하고 살았던 걸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존에 필요한 단어만 쓰는 사람과 정치적 견해를 나누거나 환경 및 인권에 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을 앞에 두고 내가 바라 본 푸른 바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에게 바다는 그냥 바다일 뿐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고 무슨 공감을 할 수 있을까요? 들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어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 나를 나타냅니다. 아이의 어휘력이 생활과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성적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아이의 어휘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하는 말이 아이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1000개의 말을 가지고 사람들과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소통만 하며 살아가느냐 혹은 같은 자연 환경을 보고 같은 사회적인 상황을 보더라도 얼마나 다양하게, 그리고 깊고 따뜻하게 이야기하며 살아가느냐는 아이의 언어, 즉 어휘력에 달려있습니다.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고 한 것처럼 어휘력의 한계는 내가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어휘력이라는 것이 비단 많은 단어의 뜻과 의미를 알고 정확하게 활용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말과 글에 온기가 묻어나는 어휘력이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울림이 있는 소통을 하며 또 공부하는 아이들로 자라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신문, 잡지로 어휘력 확장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