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큰 아들의 공부를 봐주느라 저녁에 늦게 함께 잠드는 경우가 많다.
6학년 올라가고
몸무게도 얼추 비슷해지고 발은 나 보다 더 커진 아들인데
아직 어린 아이 같다.
내 책 중 한 부분에 이렇게 썼었다.
12살이라는 나이가 어떨 때는 ‘12살이나’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쪼금 한 게’가 되기도 하는 마법 같은 나이입니다. 그런데 실제 아이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어떨 때는 사소한 장난감 하나에 열광하는 7세 아이 같다가도 또 어떨 때는 25살쯤 되는 성인 어른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내 아이에게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 주어야 하는지 늘 헷갈립니다.
-평생공부력은 초5에 결정된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어떨 때는 참 어린 듯 하다가 또 어떨 때에는 벌써 이만큼이나 컸는데, 왜 아직? 이라는 질문이 가득 차고 마음은 바빠지게 된다.
아이와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데 방학이라고 그동안 바빴던 엄마의 본분을 다 한다며
'도와준다며' 시작한 함께 공부하기를 하다보니
속에서 열이 부글 부글...
답답.... 한 상황에
화가 막 !!! ㅜㅜ
그리고 다음 날 혼자 걷기를 하다가 '이건 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잠에 들며 아이에게 이야기 했다.
OO아, 엄마가 공부하다가 너한테 화내면 어떤 생각이 들어?
내가 왜 이렇게 안했을까, 이렇게 할 걸 이라는 생각이 들어.
네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응
아니야, 네가 잘 못한 거 아니야.
엄마는 네가 공부를 잘 할 때만 사랑하지 않아.
다른 엄마들도 그건 다 마찬가지야.
네가 어떤 모습이어야만 사랑하는게 아니라
그냥 너를 다 사랑하는거야. 네가 못해도, 네가 부족해도
네 존재가 엄마한테는 소중하고 다 귀해.
그런데, 엄마가 너에게 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너를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럼?
아, 엄마가 불안해서 그렇구나 라고 생각해줘.
네 탓이 아니라 엄마가 지금 더 많이 걱정해서 그러는 거라고.
근데, 나도 불안할 때가 있어.
그치? 엄마도 그랬거든. 그래서 너한테 강하게 말했는데.
걷다가 생각해보니까 우리는 꽤 긴 마라톤을 할거야.
100m를 뛸 때는 누가 빨리 가느냐가 중요하지만 길게 가는 마라톤 선수들은 초반부터 빠르게 달리지 않아.
끝까지 가기 위해 조절하는 거거든.
너는 늘 꾸준하게 네 할 일을 잘 하잖아.
자꾸 엄마가 마음이 조급해지니 네가 잘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발견했어.
네가 잘하는 98개를 별개 아닌 것 처럼 생각하고 2개가 부족하다고 그것만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미안했어.
그리고, 그 2개는 우리가 지금 같이 하고 있잖아. 하고 있으니 어제보다는 분명히 내일이 낫지 않을까.
그렇겠지?
아이가 훨씬 편안해 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마음 한 구석에 다시 다짐을 한다.
잘 해야만 내 아이가 아니라는 것.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너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 말이 나의 욕심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