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온쌤 Sep 12. 2022

바스크 치즈 케이크와 아포가토

추석 날, 남겨진 나와 둘째는 엄마 집으로 향했다.

"엄마, 나 점심 먹으러 갈게. 맛있는 거 같이 먹고 예쁜 커피숍 가자!"

그런데 생각보다 식당이 많이 문을 닫아 집 근처 3층 건물의 큰 커피숍으로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1층에 빵 종류가 다양하게 있고 2층, 3층에 전망 좋은 자리들이 있는 예쁜 커피숍이었다.

"이런 곳을 어떻게 알았어?"

"아빠랑 산책하다가 봤지. 사람도 많고 전망도 좋길래 생각이 났어."

아빠와 둘째가 2층에 자리를 잡으러 간 사이에 엄마와 나는 빵을 골랐다.

"엄마, 이거 소금 빵이라고 하는 건데 요즘 유행이야. 한번 먹어봐."

소금 빵을 권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크루아상 먹어본 적 있던데 맛있더라며 크루아상 한 개와

치즈 든 빵을 찾고 계셨다.

아무리 살펴봐도 치즈 든 빵이 없는데 저기 진열대에 바스크 치즈케이크가 보이길래 저기 치즈케이크 먹자고 했더니 가까이 가서 본 엄마가 갑자기 손을 다급히 흔들며 싫다고 하신다.

"왜? 치즈 있는 건 저거 밖에 없는데?"

"야~ 저 쪼끄만 게 세상에 6500원이나 한다. 저거 어디 먹겠니.."

며칠 전 시금치 8가닥에 5000원이더라며 깜짝 놀랐던 우리 엄마가 조각 치즈 케이크를 보고 그만큼이나 놀라신 듯하다.

"엄마, 다 그래~ 자주 먹는 것도 아닌데 뭘~"

한사코 싫다는 엄마를 뒤로하고 바스크 치즈 케이크도 시켰다.

커피를 시키려고 하는데 내 마음대로 아빠에게는 아포가토, 엄마에게는 아인슈페너를 시켜드렸다.

커피와 빵을 들고 2층에서 함께 앉아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엄마 아빠 나 (물론 둘째 아들도 함께였지만) 이렇게 커피숍에 있는 것이.

평소 리액션 좋기로는 일등인 엄마가 치즈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더니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음~~~~~ 이거야. 지난번에 ㅇㅇ이네 엄마랑 같이 먹었던 치즈 케이크가 딱 이 맛이었어. 그때 진짜 맛있었거든. 그 친구가 내 생일에 치즈케이크 큰 거를 사줬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며칠 먹었다"

난 우리 엄마가 치즈 케이크를 좋아하는지 왜 몰랐지?

'엄마, 떡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나 빵도 좋아해."

6500원짜리 치즈케이크로 몇 번을 행복해하시며 드시는 모습을 보니 좋은데 또 한 편 마음이 울렁였다.

"엄마, 산책하다가 아빠랑 이런 곳도 한 번씩 오고 그래. 여기서 먹고 싶은 것도 자주 사 먹고."

"아빠랑은 가는 곳이 따로 있어(주로 곱창집)"

아인슈페너의 크림에도 몇 번을 좋아하시던 엄마가 아빠의 아포가토를 먹어보고 또 감탄하셨다.

커피를 잘 안 드시는 분이긴 하지만 아포가토도 드셔봤는데 아빠의 아포가토는 뺏어 먹는 맛이 있는지

그 집 커피가 유독 맛있었는지 계속 뺏어 먹더니 결국 아빠랑 바꾸자고 하셨다.

(또 바꿔주는 우리 아빠)

아포가토와 치즈 케이크에 무척 행복해하시며 커피숍에서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 이야기도 아닌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도 즐겁고 여유 있고 따뜻하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시 생각날 것 같은 날씨와 분위기와 그 감정들.

따뜻하고 충만하다.

가족이 주는 힘일까.

계단을 내려가며 메뉴판을 보며 '아포가토'를 따라 읽고 가시는 우리 엄마.

귀여워. 내가 치즈 케익 자주 사드릴게요~

작가의 이전글 허준이 교수의 축사를 되뇌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