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이란 곳은 다른 곳보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곳이다.
이제 막 교사가 된 신규나 교직 30년 차의 선생님 모두 같은 교사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선생님'으로 불리니까.
수평적인 조직 문화 속 '승진'이라고 한다면 교감, 교장이 되는 것일 텐데, 이 길이 참 가시밭길이다.
잘 모르는 내가 언뜻 주워 들어도 필요한 점수, 챙겨야 할 추가 점수, 근무 평점, 개인 연구 점수 등등이 소수점 단위로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승진에 뜻이 없는 내가 다른 점수는 아무것도 없는데 '개인 연구 점수'가 모두 다 채워졌다.
혼자 사부작사부작하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아이가 7,4살이었던 복직 다음 해와 그다음 해 2년 연속 연구 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니 바로 채워졌다.
그때 나는 육아에 매몰되어 있던 일상에 나만의 영역을 찾고 싶었다.
그놈의 나만의 영역, 나만의 전문성이 문제다.
나는 육아가 너무 힘들 때 연구대회를 찾고, 코로나로 내가 없어질 것 같을 때 작가를 한다며 기획서를 썼다.
동료 선생님이 나보고 미쳤다고 했다. 힘들면 그냥 쉬면 된다고.
아무튼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 없는데 맨땅에 헤딩을 그나마 폭신한 곳에 했던지 2년 연속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이 꼬리표는 학교를 옮겨도 소문이 났다.
한 선배 선생님께서 연구대회를 준비 중이시다.
서로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올 초 조심스레 나에게 문을 두드리셨다.
계획서 쓴 것을 좀 봐달라고.
계획서를 봐드리고 보고서를 봐드린다는 것은 잘된 점 보다 수정할 점들을 이야기해야 할 텐데, 내가 정확한 기준인 것도 아닌 데다가 아직 어렵기만 한 선배 선생님의 부탁에 내가 과연...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 입장에서는 오죽 절박하셨으면 작년에 학교를 옮긴, 아직 친분을 쌓지도 못한 나에게 부탁을 하셨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한 번 봐 드렸다.
그리고 며칠 전, 또 한 번의 메시지가 왔다. 제출 전에 지금까지 쓴 내용을 보고 피드백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보내주신 파일을 얼른 뽑아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조금만 읽어보아도 지난 한 학기 동안 아이들과 얼마나 부대끼며 열심히 지내셨을지....
방학 때 이 활동들을 글로 엮어내느라 얼마나 힘드셨을지가 느껴졌다.
충분히 잘 하고 계시면서도 자꾸 불안하고 걱정되시는 것 같다.
이야기하는 중에 그렁 맺힌 눈물에 나 또한 같이 코 끝이 찡해졌다.
선배 선생님은
'저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요. 올해는 꼭 내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했거든요.'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승진을 위해 필요한 점수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아이들과 한해 영글게 살아가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육아에 매몰된 사람이 어느 구석엔가 숨어있는 나를 찾아 집중하고 싶은 시간이기도 하다.
선배 선생님의 완주를 응원합니다.
또, 보고서를 제출하신 모든 선생님의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