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뭐라고 안 해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은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자기 등을 다 뒤덮는 새 책가방을 매고 아무에게나 신나게 인사해가며 학교에 들뜬 마음으로 오니 얼마나 예쁜가.
1학년 교실 옆 학습 준비물 실을 지나치기만 해도 '선생님은 누구예요?'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자꾸 내 소개를 해야 한다. 잠깐, 그런데 지금 수업시간인데 너는 왜 나와 있니?라고 물으면
'좀 답답해서요.'라고 말하는 패기! 크...
의외로 처음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학교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다.
낯선 환경에 두려워할 것 같은데 신나고 들뜬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한 명, 한 명 예쁜 아이들이 모인 반을 맡은 선생님은 왜 이렇게 정신이 없고 힘들까.
얼마 전, 극한직업에 1학년 담임 편을 보고 정말 공감 공감했다. ^^
토끼를 그리려고 하는데 자기 생각처럼 그려지지 않는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한 참.
뒤 돌아보니 짝과 가위 바위 보 하는데 짝이 늦게 냈다고 선생님께 이르러 오는 아이.
수업 중간에 걸어 나와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감기약 먹을 시간이라고 약 먹여 달라는 아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실 1학년뿐 아니라 꼬맹이들은 다 귀엽다.
뽀로로, 펭수 이야기를 하면 '아, 시시해.. ' '나 유치원 때 보던 건데' '저 그거 다 알아요'라며
꽤 거들먹거리지만, 그들의 아이다움은 어느 순간에나 불쑥 튀어나온다.
특히, 급식시간.
반찬 투정하는 아이, 잘 안 먹는 아이,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싸움이 나는 아이 등 등..
올해 1학기 일이다. 코로나로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것도 제한이 있어서
간편식으로 나왔다. 그날도 미니 햄버거 같은 것이 나왔고 반찬 몇 개 더 나왔던 것 같다.
아이들은 급식에서 햄버거를 처음 본다고 흥분했고 나는 급식 안 먹고 가는 아이 배웅하기, 배식할 때 열 체크 및 장갑 끼고 음식 가져가기 지도 등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애들아, 맛있게 먹지만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라고 이야기하고 나도 다 식은 음식을 급히 먹고 있는데 또 치우러 오시는 분들이 보이기에 다 먹지 못하고 반납했다. 역시 급식시간은 정신없다.
아이들이 가고 나서 교실 청소를 하는데
자꾸 파리 몇 마리가 돌아다닌다.
한 참 청소하다가 이유를 알아냈다.
햄버거에 있는 양상추가 먹기 싫어서 서랍에 넣어 둔 아이가 3명이나 있었다.
그것도 소스가 범벅이 된 양상추를..
일주일에 한 번 등교하는 자기 책상 서랍 속에 ㅠㅠ
아이고.. 이 녀석들아...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이야기해도
이 녀석들에겐 급식판에 남기는 것이 부끄러웠을까?
처음이 아닌 것 같은 이 능숙함은 뭐지?
어느 날 갑자기 교실에 날파리가 날아다니기 시작한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어딘가에 무엇을 숨겨놨을 가능성이 있다.
교실을 지키기 위한 보물찾기!
그래도 귀엽다. 그래도 사랑스럽다.
학교에서 보고 싶다.
9.20일까지 못 본다는 소식을 들은 날 저녁에 선생님이..
p.s. 선생님 진짜 뭐라고 안 해. 그냥 급식판에 버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