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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라인 수업 준비

씁쓸함과 공허함

by 라온쌤

3월, 코로나로 2주 아이들을 늦게 만난다고 하여 '버츄프로젝트'책을 다시 읽고 있었습니다.

올해 아이들과는 버츄 프로젝트를 꼭 해 보고 싶었거든요.

2주 후면 만날 수 있을 줄 알고 기다렸던 시간들은 점점 미뤄져서 5월 말에나 가능했습니다.

그동안 몇 번의 등교 개학이 미뤄지고 온라인 수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학교도 일대의 혼란으로 뒤숭숭했습니다.


처음 접하는 시스템인데 E학습터냐 온라인 클래스냐 구글 클래스룸이냐를 분석하고

그러면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냐. 어디까지 가능하고 어디까지 가능하지 않은 것이냐.

유튜브를 볼 때 유사 영상이 뜨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하냐. 아이들의 디지털 활용능력이 얼마나 가능할 것이냐.

쌍방향이냐 과제제 시형이냐 등등... 수많은 논의 끝에 첫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몇 번의 등교를 미루는 과정을 통해서

1. 교사는 일 안 해도 돈 받는 직업이라는 우리 지역 교육감의 이야기를 들었고

2. 우리의 이야기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았고

3. 등교 개학 및 모든 일정은 공문보다 맘 카페를 통해 알게 되는 상황을 겪었고

4. 1-3학년과 4-6학년을 나누어 등교 개학을 결정한다는 교육부 장관의 이야기를 듣고 3-4학년이 같은 학년군으로 묶인다는 걸 정말 모르는 사람들밖에 없나?라는 생각을 했고

교사가 철저하게 교육의 주체로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참 씁쓸했지만, 교사들은 그 와중에 새 학년 만나는 아이들과 지낼 학습 꾸러미를 만들어 제작하고

쪼꼼한 아이들이 그래도 선생님 목소리라도 좋아한다고 하니, 잘 못하는 녹음도 계속 배워해 보고

구글 폼으로 퀴즈 작성해볼까?

퀴즈 앤 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퀴즈 작성 가능하다던데?

닥줌이라는 프로그램이 괜찮대. 라며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타의 반 콘텐츠 제작자가 되었습니다.

능숙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업은 아니었고

또, 녹음으로만 할 수 있는 활동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초등은 아이들이 항상 움직이고 이야기하고 수다 떨고 만들고 싸우고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배우는데, 내 목소리 하나로 교과서 공부한다고 뭐 얼마나 재미있겠나요?

온라인 수업을 지나오면서 정말, 교사는 특히 어린아이들의 교사는 콘텐츠 전달자가 아니구나.

사교육 업체에서 나오는 많은 패드를 이용한 학습툴들이 있으나 그것이 학교를 대체할 수는 없겠구나를 느꼈습니다. 특히, 아직 공부 습관이 잡혀있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더욱더.


2학기가 되어 다시 온라인 수업을 준비합니다.

PPT를 만들고 디지털교과서 화면을 녹화하고 편집하고 거기에 목소리를 입히고 그리고 활동할 자료들을 넣습니다.

이제 제법 익숙해져서 드로잉 펜으로 판서도 하고 E학습터에 아이들 아침인사 오후 인사로 습관 잡기 활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익숙해져 가는데 마음 한편이 괜히 씁쓸합니다.

이렇게 내년까지 간다고 하면,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아이들은 사람을 통해서 배웁니다.

교과서를 배우는 것은 정말 일부입니다.

또래를 통해서 그리고 모델링할 수 있는 어른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나는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2학기 교과서 받으러 온 여자 아이 3명이서 교문 밖에서 깡총깡총 뛰면서

'우리 선생님이다'라고 외칩니다.

본관을 나오는 순간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교과서 열댓 권 품속에 안고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짧은 순간이라도 컴퓨터가 아니라 아이들과 교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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