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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쌤 Oct 07. 2020

한양도성 스탬프 투어 1코스

내 다리가 새 거라서 그래.

작년 가을, 학교의 공사가 지연되어 가을에 단기 방학이 생겼다.

일주일의 짧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10살 큰 아이와 한양 도성 스탬프 투어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나 혼자의 결심)

큰 아이를 위해서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가 단 둘이 데이트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둘 째는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유치원 간 사이에 우리 둘이 데이트 겸 날씨 좋은 가을 산행을 계획한 것이다. 게다가 한양 도성은 4개의 산행코스가 있는데 모두 스탬프를 찍으면 배지도 준다니 도전 의식이 생겼다.

한참 가는 길을 살펴보다가 처음에 어려운 것부터 해치우자는 마음으로 어렵다는 1코스를 먼저 공략하기로 결심. 아침 일찍 배낭에 물과 간식을 싸들고 아이와 함께 지하철 여행에 나섰다.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알콩 달콩 이야기 꽃을 피우며 한 시간 가까이 이동했다.

출발 전에 든든하게 아침도 먹고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9시 30분.

이제 막 초입인데 계단이 제법 가파르다. 

평소 잘 걷지도, 운동하지도 않는 나는 처음 순간부터 '어? 이거 만만치 않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성길 입구. 날은 좋고, 계단은 많다.

처음 계단을 하염없이 올라가 땀을 식힐 겸 뒤를 돌아본 풍경이 절경이다.

가을 하늘은 항상 옳고, 산에 둘러싸인 서울의 모습도 멋지다.

내가 땅에서만 보던 각박하고 답답한 빌딩 숲이 아니라 커다란 산에 귀엽게 옹기종기 붙어있는 것 같은 모습이 정겹기까지 하다. 

두 시간이면 걷는 코스라 했는데 초보인 우리는 3시간 이상 걸었나 보다.

어느 순간에는 다리에 감각이 없고 그냥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


그래도 중간에 멈추어 숨 한 번 고르고, 땀 한 번 식히고, 간식 먹고

1.21 소나무 이야기도 해주고, 지나다니는 등산객이 '아이가 여기까지 왔네?' 하는 이야기 한 마디에 또 같이 칭찬해주고...

아이도 힘들다고 하다가도 다시 힘을 내서 끝까지 걷는다. 기특하고 대견하다.

서울 도성길을 걸으며 아이와 함께하는 하나의 경험이 더 생긴 것에도 감사하다.

우리는 3시간 길을 걸으며 서로 힘을 내도록 북돋아주고 선풍기 바람을 넘겨준다.

다리는 감각이 없지만 마음은 참 따뜻하다.

숙정문에 다다르니 1시가 넘어선 시간. 근처에 유명하다는 빙수집에 들러 시원하게 빙수도 먹고 근처 시장에서 밥 먹을까?라는 나의 질문에 괜찮다며 바로 집에 가자던 아이. 많이 힘들었구나. 



우리의 점심이 되어버린 빙수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는 우리 둘 다 말이 없었다.

다리 아프다던 아이를 마사지하며 잠들었는데 다음 날 정말 몸살이 난 건 아이가 아니라 나다.

아이에게 "넌 다리 안 아파?"라고 물었더니 하나도 안 아프다며

"엄마 내 다리가 더 새 거라서 그런가 봐."라는 아이.

좋겠다. 네 다리 새 거라서.

엄마는 몸살이 나서 한양 도성 스탬프는 1개로 끝이다. 우리 내년에 이어서 가자 라고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약속은 지킬 엄두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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