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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쌤 Dec 14. 2020

왜 책을 읽어도 어휘력은 늘지 않을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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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인지 확인해 보세요.

‘읽기는 언어를 배우는 최상의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방법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언어학자 스티븐 크라센 (Stephen D. Krashen)은 ‘읽기 혁명’이라는 본인의 책에서 ‘자발적 읽기(FVR: Free Voluntary Reading)’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읽기를 통해서 언어를 배울 수 있는데 그 읽기라는 것이 즐거움이 동반되는 ‘자발적 읽기’ 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핵심 내용입니다. 아이가 즐거움이 동반되는 읽기를 하려면 재미있는 책,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혹시 아이의 영어책 읽기를 진행해 보신 적이 있나요? 영어 읽기 책에는 책마다 AR 지수나 렉사일 지수라고 해서 어휘나 독해 수준에 따른 읽기 난이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의 AR 지수는 3점대이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는 책을 찾아 읽히면 되고 본인 렉사일 지수에 맞는 책을 찾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 우리나라 책에는 읽기 레벨이 정해져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한 때, 교보문고에서 리드 지수라는 읽기 지수를 운영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중단되었습니다. 

대신 우리는 각종 단체에서 학년 필독서 또는 추천 도서로 추천하는 책을 통해 대강의 학년별 난이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매 학년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찾아서 실천해 본 결과 추천 도서나 필독서는 현재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보다 보통 한 단계 어렵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도서연구회의 추천 목록은 추천합니다) 

한 반에 20명의 아이가 있다면 추천 도서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아이는 5명 미만입니다. 이는 어린아이들의 전집 추천 글들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6~7세가 읽는 책이라고 되어 있는 내용도 살펴보면 초등학교 3학년 교과에 나오는 내용이 많아, 되려 3~4학년 수업할 때 그림책을 찾아 참고 자료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읽을 책을 제시할 때 제 학년보다 아래 학년의 책을 추천하여 읽히려고 하면 뭔가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이제 3학년인 아이에게 1~2학년 추천 도서를 읽히는 것은 뭔가 찜찜한 것이지요. 되려 4학년 추천 도서를 미리 사놓고 오래 읽으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독서는 선행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 그 책은 4학년 후반이 될 때까지 방치될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읽는다고 하더라도 책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한 번 읽은 책으로 끝날 것입니다. 아이에게 책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기 위해서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려운 책 보다 쉬운 책을 선택해주세요. 

전집이 얼마나 비싼데라며 한두 치수 큰 옷을 사 입히듯 1~2학년 높여서 책을 사주지 말아 주세요. 아이들이 책을 싫어하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두 개의 책을 놓고 고민이 될 때는 더 쉬운 책을 선택하는 것이 낫습니다. 저렇게 쉬운 책을 읽는 것이 어휘력 향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도 쉬운 책을 즐겁게 읽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글자를 ‘해독’하고 뜻을 이해하는 ‘독해’의 과정을 지나 내 나름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기화’하는 과정까지 거쳐야 잘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이 너무 어려우면 아이는 책을 해독하는 것에서 멈추고 독해나 자기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기 때문에 눈으로 글을 읽는 기계적인 과정을 거치는 것뿐입니다.

책의 수준이 ‘쉽다, 어렵다’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통 한 페이지에 내가 모르는 단어의 개수가 10개가 넘는다면 아이의 수준에 맞지 않은 책입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대략 단어의 90% 이상은 알아야 나머지 10%의 단어를 문맥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한쪽을 꺼내서 10개 이상의 단어를 모른다면 아이가 하는 독서는 크게 와 닿지 않는 독서일 것입니다.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을 선택하기 위해서 도서관에 자주 함께 가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도서관에 함께 가서 아이가 스스로 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아이가 선택한 책을 대여하기 전에 테이블에서 자신이 고른 책을 잠깐 읽어보도록 합니다. 몇 장 읽다 보면 이 책은 재미있겠다, 재미없겠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처음 아이들에게 책을 고르라고 하면 잘 고르지 못합니다. 평소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분야의 책을 표지나 제목만 보고 고르기도 하고,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골라 몇 쪽 읽다가 읽지 않기도 합니다. 아이가 자발적인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고르는 기회를 자주 갖고 연습해보아야 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은 경험이 다음 책을 읽어보고 싶은 동기를 부여합니다.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책, 남들이 좋다는 추천 도서 이 전에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고른 책 한 권이 아이가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3. 잘 읽고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꾸준히 읽고 있는데 어휘력이 느는 것 같지 않다면 아이가 책의 내용을 잘 읽고 있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의 읽기를 방해하는 방법 중 디지털 읽기와 빠르게 읽는 속독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책을 읽지만, 제대로 내용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2019년 7월 방영된 SBS 스페셜 ‘난독 시대- 책 한 번 읽어볼까?’ 편에서는 디지털기기에 익숙한 사람들이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실험을 하였습니다. 아이트래킹(Eye Tracking)이라는 장비를 통해 시선이 머무는 곳을 추적하며 읽는 방식을 검사했습니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들은 책을 읽을 때 시선이 문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Z형이나 F형의 시선, 또는 역행의 시선으로 디지털 읽기의 형태가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처음 한두 문장을 읽고, 맨 끝으로 와 결론을 확인한 다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자신이 이해한 부분의 세부 내용을 찾기 위해 읽는 것입니다. 좁은 화면을 스크롤해서 읽는 것처럼 위아래로 시선이 움직이고 전체를 읽지 않고 중간중간 띄어 읽고 훑어 읽습니다. 이런 읽기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읽고 있지만, 오히려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0~8살 아이들의 디지털기기 접근율이 높은 요즘 아이들은 사실 아기돼지 삼 형제 그림책보다는 유튜브 동화 영상을, 종이책의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 스크롤을 내리는 것을 먼저 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종이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법을 충분히 배우고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디지털 읽기의 특성을 먼저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디지털 읽기 방법이 ‘잘못된 방법’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현재 독서를 통한 어휘력을 향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읽기 방법임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종이책 읽기 방법을 익히지 못한 채로 학교에 입학하여 줄글로 된 교과서를 살펴보고 문제집을 읽고, 긴 글의 책을 읽으려고 하나 잘 읽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디지털 읽기와 종이책을 읽는 것은 각각 다른 방법의 읽기이며 디지털 읽기의 특징이 훑어 읽기인 만큼 이렇게 읽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은 ‘깊이 읽기’를 어려워합니다. 


노르웨이 연구진이 10대 학생들에게 좋아할 만한 주제의 단편 소설을 골라 절반은 디지털로, 절반은 종이책으로 읽게 했습니다. 실험 결과 종이책으로 읽은 그룹이 디지털로 읽은 그룹보다 시간 순대로 줄거리를 재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디지털 읽기는 종이책 읽기와는 확연히 다른 방법이며 사용하는 뇌의 부분도 다릅니다. 아이가 책을 읽는데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아이가 지금 책을 ‘읽기’보다는 띄엄띄엄 글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잘못된 읽기 습관 중 다른 하나로는 빠르게 읽는 속독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속독하는 아이들 또한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대강의 흐름을 통해 훑어 읽기를 하는 것입니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책 한 권을 들고 아끼는 선물을 보듯, 맛있는 과자를 입속에 넣고 혀로 녹이며 찬찬히 그 맛을 음미하듯 읽어야 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거기 쓰인 단어의 의미가 보이고 그 광경이 상상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 마치 숙제를 해치우듯,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이듯 읽지 않았으면 합니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두 번 세 번 읽어보고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함께 즐기는 책 읽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읽기 위해서는 책을 빨리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적정 속도가 있을까요? 공부 머리 독서법의 저자는 책 속에서 ‘소리 내어 읽는 정도’의 속도로 정독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보통 묵독(소리 내지 않고 책 읽기)은 음독(소리 내어 책 읽기)보다 두 배 정도 속도가 빠르다고 하며, 속독하면 빨라진 만큼 독해력에 손해를 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디지털 읽기의 방법에 익숙한 아이들, 정확하게 읽지 않고 빠르게 읽으려는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기’ 방법을 추천합니다. 우선, 소리 내어 읽으면 빨리, 대충 읽으려는 습관을 고칠 수 있습니다. 글을 읽고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하면 어절 단위로 잘 끊어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을 읽을 때, 정확한 발음으로 의미 단위로 묶어 읽지 못한다면 아이는 지금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꾸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의미의 단위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되므로 자연스레 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또한, 눈으로 글자를 살펴 가며 입으로 계속 읽으면 책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책의 내용에 몰입하기 더 쉽습니다. 

소리 내어 읽는 것은 눈으로 읽는 것보다 다양한 자극을 통해 뇌를 더욱 활성화하는 방법입니다. 눈으로만 읽는 것과 다르게 내가 입으로 소리 내고, 그 소리가 다시 귀로 들어와 의미 단위로 끊겨서 이해되는 것까지의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을 때는 소리 내어 읽도록 해보세요. 아이가 지금 소리 내서 잘 읽지 못한다면 정확하게 읽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긴 줄글 책으로 넘어갔을 때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책 전체를 모두 소리 내어 읽기가 힘들다면 한쪽씩 아이들과 번갈아 가며 읽는 것도 좋습니다. 엄마 한쪽, 아이 한쪽 나눠 읽다 보면 책을 읽고 난 뒤에 아이와 함께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좋을 것입니다. 

독서를 하면 어휘력이 향상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바른 방법으로 책을 읽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4. 짧은 콘텐츠 위주의 읽기 습관은 아닌가요?

아이가 많은 양의 독서를 하지만 학습 만화 위주의 독서를 한다면 ‘어휘력’ 측면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학습 만화는 다양한 지식을 축약해서 담고 있으며 아이들의 흥미를 고려한 콘텐츠입니다. 즉, 아이들에게 지식과 흥미를 동시에 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그런데 한 번 학습 만화의 즐거움에 빠지면 긴 글의 책은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학부모님은 아이가 다른 책은 안 찾아도 학습 만화는 앉은자리에서 십여 권을 뚝딱 읽어내리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습 만화를 한 번 살펴보면 글의 흐름이 아주 짧습니다. ‘그때, 커다란 버스가 굉음을 내며 내 앞으로 돌진하였습니다.’라는 상황을 ‘쾅!’ 한 마디면 짧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림 위주로 상황을 표현하기 때문에 짧은 글마저도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림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중간중간 어려운 단어를 그림 아래에 설명해 놓은 글이 있지만, 아이들은 사실 그 글은 읽지 않습니다. 학습 만화는 흐름이 빠르고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어휘, 고급 어휘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소설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며 우리는 글의 앞과 뒤의 문맥상 대충 이런 의미겠다는 ‘추론’을 통해 단어의 뜻을 유추해 봅니다. ‘추론’은 전두엽의 주된 기능 중 하나입니다. 문맥과 앞뒤의 내용을 통해 추론하여 새로운 단어로 어휘를 확장하는 것이 독서로서 얻을 수 있는 큰 이점인데 학습 만화는 이 점이 어렵습니다.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긴 글로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추론’ 하기가 어렵습니다. 

학습 만화를 읽게 되면 지식은 얻을 수 있지만, 독서가 주는 이점인 ‘독해력’ ‘사고력’ ‘어휘력’의 향상은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른 책도 다 즐겁게 읽는데 학습 만화도 잘 읽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습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긴 글 책을 거부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부족한 어휘력으로 글자가 많은 책은 읽기 어려우니 더욱 만화만 찾게 되고 어휘력은 더욱 빈곤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국 교육정보 미디어 학회에서 발간하는 교육정보미디어 연구 간행물에서 ‘초등학생의 학습 만화 선호 성향이 국어 어휘력에 주는 영향 분석’(김영환, 이성인, 이현아, 제19권 3호)라는 제목의 연구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들의 77.2%가 학습 만화를 선호하였고 이 학생들의 국어 어휘력 평균 점수가 일반도서를 선호하는 초등학생들에 비해 9.14점이 낮았다고 합니다. 

아이가 학습 만화만을 고집한다면 아이는 이미 긴 글 책 읽기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학습 만화를 읽는 것은 어휘력을 향상할 수 있는 독서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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