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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쌤 Feb 23. 2021

그놈의 DT가 뭐라고

틀려도 된다고

큰 아이는 4학년이 되고 나서 대형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시간이 많이 빼앗긴다는 것을 알기에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 적정 시점으로 잡은 것이 4학년이었다.

처음 레벨을 받을 때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높게 나와 그동안 집에서 했던 공부들이 헛되지는 않았나 보다 하며 이제는 바통을 학원에 넘기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더니 3개월 정도 지나고 나니 특유의 성실함으로 잘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좀 멀리서 보려고 노력한다. 

그냥 학원 숙제를 스스로 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시간 지켜 잘 다니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옆에 함께 앉아 공부를 도와줄 만큼의 신체적, 시간적 여력도 되지 않고 그냥 사이라도 좋은 것이 낫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다.


얼마 전 이사를 했고 다니던 어학원의 체인을 바꾸어 수업을 들었다.

이제 꼭 영어 학원 다닌 지 1년이 되어간다.

3개월에 한 번씩 DT( Diagnostic Test)라고 단계를 잘 이수했는지 보는 시험이 있다.

오늘이 그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사실 이번 3달 중 아이는 10일 정도 출석을 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대면 수업을 못하고 온라인 수업만 듣고 이제 학원으로 가서 수업을 들은 지 3번밖에 안 되었다.

그런데, 아이는 새로 옮긴 이 곳에서 잘하고 싶은가 보다.

지난주부터 DT준비를 한다고 정신이 없다.

꽤 불안해 보이고 가슴 떨려하길래 아이에게 물어봤다.


지금 걱정되고 불안한 네 마음이 왜 그런 것 같아?

시험을 잘 보고 싶은 마음이야?

아니면 시험을 잘 못 볼까 봐 두려운 마음이야?


'나는 시험을 잘 보고 싶어, 엄마'


왜 시험을 잘 보고 싶어? 


'이왕 해야 하는 거면 잘하고 싶으니까.'


그래, 네가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거는 아주 훌륭해.

그런데, 네가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고 긴장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그게 더 싫은데.


'근데 나도 모르게 자꾸 마음이 쿵쾅거리고 긴장돼.'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네가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열심히 노력했으면 그걸로 된 거야.

너무 긴장하지 마.


'나 좀 안아줘'



나는 이럴 때마다 큰 아이가 참 안쓰럽다.

조금 더 편했으면 좋겠는데,

조금 더 여유 있었으면 좋겠는데...

작은 돌 턱에도 쿵 하고 넘어질 것만 같은 아이의 세심함이 염려스럽기도 하다.


학원에 가는 순간까지 놓지 않고 공부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수능 보다가는 기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그렇게 너그러운 엄마가 아닌데

큰 아이에게는 늘 


괜찮아

별 일 아니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쓰리 콤보만 연신 내뱉는다.

그럼에도 그 아이의 특성은 그렇더라.


똑같이 키워도 둘째는 학교에서 보는 받아쓰기 시험도 일부러 엄마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1학년에서 5개 중 4개를 틀리는 아이이다.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

라면 항상. ' 아, 맞다!'를 외치는 '아 맞다'친구.


그리고도 '모르면 틀릴 수도 있지. 5개 중에 1개 맞았을 뿐인데' 라며 틀린 것보다는 맞은 것에 

중점을 두는 둘째.


나는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키운 것 같은데 참 다르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왔다.

밝고 개운한 얼굴만은 아니다.

그냥 꼭 껴안아 줬다. 

고생했다.


간식을 먹더니 아이의 긴장이 풀렸는지 시험 후기를 늘어놓는다.

이 단어가 좀 헷갈렸고, 이 부분이 좀 어려웠고...라고 말하는 큰 아이 옆에서

둘째가 '형아, 나도 그럴 때 있는데 채점해보면 다 맞았더라. 형아도 그럴 거야. 걱정 마.'

라며 인생 조언을 해준다.


씨익 웃으며 첫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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