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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15. 2022

#87. burn out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그간 어찌어찌 버텼던 것 같은데 오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방전되었다. 아이폰 배터리가 방전되면 무엇을 하고 있다가도 순식간에 사라지듯 나도 오늘 그렇게 되었다. 집에 오자말자 집안일을 하고 대충 씻고 한동안 앉아서 멍 때리다가 누우면 정말 이대로 잠들 것 같아서 서서 한동안 조용하고도 작은 원룸에서 이리저리 고민했다.


지금 잠을 자는 것이 옳은 걸까. 아니야 지금 자려고 눕는 것은 너무 시간낭비야. 그런데 꾸벅꾸벅 졸린 듯하다. 겨우내 뜨고 있는 눈이 자꾸만 감기려는 듯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방 안의 모든 불을 켜 두고 매트리스에 얼굴을 겨우 걸치고 맨바닥에서 잠깐 누워있었다. 시간 개념이 없었다. 그 시간이 몇 시였는지도 모르고 내가 그러고 얼마나 잤는지도 모르겠다.


잠에서 깼다. 얼마가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길어야 한 시간 정도 지난 듯했다. 사실 깬 이유는 바닥이 너무 추워서이기도 했고 창문을 열어두었지만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오는 차가운 날씨였기 때문에 정말 추워서 깼다. 한 겨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추웠다. 그렇게 정신이 들고 아, 춥네-하면서도 일어날 생각을 못했다. 너무 힘들었나 보다. 지쳤나 보다. 그래서 한동안 그렇게 계속 있다가 고민을 했다. 추우니까 옷을 입거나 이불을 덮고 매트리스에 본격적으로 눕는다면 나의 오늘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왜 그렇게 싫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추위 앞에 장사 없었다. 너무나도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이불을 덮고 누웠다. 사실 너무 추웠다. 몸을 뉘일 곳이 있는데 이런 바보 같은 생활을 살아가야 한다는 게 좀 어이가 없긴 했지만 뭐, 이렇게 가난한 삶도 겪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뭐 그렇다고 엄청난 삶을 산 것도 아니지만. 언 몸을 녹이고 또 일어나 보니 3-40분이 지나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2-3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동안 갉아먹은 체력의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만이 그 시간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댈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모르겠다. 그렇게 잠에서 허우적거리던 와중에 용돈벌이로 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 10시가 지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집 밖을 나가야 했다. 나갔더니 비가 여전히 오고 있었다. 우산을 가지러 다시 집에 갔다가 내려왔지만 우산이 있으면 방해가 된다. 고민을 하다 결국 우산을 썼다. 우산은 역시 큰 짐이었다. 10분 정도 걸어가자 비가 오지 않았고 내 손에 걸려있는 우산이 원망스러웠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실제로도 손에 뭘 들고 다니는 걸 싫어해서 우산이나 짐을 안 만든다. 우산을 들 바에야 비를 맞고 말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지배적인 인간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비가 그친 집 근처에서 오늘 저녁은 뭘 먹지 고민을 하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집 앞 슈퍼에서 파는 천 원짜리 소시지를 사서 케첩에 찍어 먹고 대충 잠을 잘까 생각하다가도 그건 너무나 부족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 포장마차에서 순대와 내장들을 섞어서 포장해와서 먹고 있다.


번아웃이 온 것 같다. 안 그래도 없는 의욕이 바닥을 찍기 시작했고, 좋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내 안에서 나오는 웃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몸에 이상이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정말 그토록 오지 않았으면 하는 번아웃이 찾아온 걸까. 파란만장하지는 않지만 막힘없이 뚫려 내달릴 수 있는 존재들을 보는 것과 나의 삶을 비교하니 자꾸만 번아웃이 오는 것 같다.


사실 그렇게 큰 차이도 아닌 건데. 사실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고 내가 특별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이 상황이 너무나도 싫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다. 누군가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고 누군가가 무슨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두렵게만 느껴진다. 누군가와 간단히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려운 지경이 되어버렸다. 미쳐버릴 것 같다. 아니 미쳐가는 것 같다.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깨어있어야 할 시간에 졸리다는 감정을 느끼고 시도 때도 없이 내 몸의 스위치를 끄고 싶다. 그 마음밖에 없다.


문제가 있긴 한 건가. 문제가 있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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