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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16. 2022

#88. 난 불교를 믿지 않았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던 존재였다. 엄마와 아빠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고 두 분은 함께 다니지는 않고 기독교의 지식도 물론 차이가 났었지만 어찌 됐던 잘 다녔고 오래 다녔고 엄마는 아직까지도 건실히 잘 다니신다.


언제였을까 기억나지도 않지만 기억 속에 흐릿하게 자리 잡은 것이 있다. 다른 종교에 관한 문제였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 집에서는 정말 쫓겨날 정도로 심각하고 중차대한 사안이었다. 물론 내가 "엄마, 나 기독교보다 불교가 좋은 것 같아"가 아니었으니 망정이지만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서 21살 군대에서 휴가를 나올 때까지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그렇게 교회를 다니다가도 나는 가장 큰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주체가 정말 현실에서 존재하긴 할까?라는 의문이었고 그 의문은 기억이 나지 않았던 엄마 뱃속에서부터의 기간을 총합하자면 20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항상 의심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아직까지도 우리 곁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무너질 때까지 손 놓고 보지 않았을 테고 어떤 식으로라도 도와주지 않았을까. 기여하지 않았을까. 어떠한 힌트라도 주지 않았을까. 어려서는 이런 생각이 너무나도 매일 들었다.


엄마가 주는 십일조를 꼬깃꼬깃 들고 가서 헌금을 했지만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는 그 과정들이 정말 의심 그 자체였다. 이 교회가 사이비일까 아닐까 하는 고민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왜 여기 다닐까 하는 생각에 스무 살 때부터 교회 다니기를 거부했다. 그 전에는 강압적으로 가야 하니까, 가라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내니까 갈 수밖에 없었다. 갈 때마다 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생겼지만 누구 하나 붙들고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기독교라는 집단에 미쳐있었으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면 내가 잘못됐다고 치부하며 네가 기도하는 횟수가 줄고 기도하는 방법을 몰라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못한 거다라고 모든 결론을 그렇게 맺었다. 그 꼴이 너무나도 싫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와중에도 하나님이 먼저라며 경매는 뒷전이고 교회를 다니고 현실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기도만 매일같이 드리고 헌금을 드리는 꼴이 나는 너무나도 불만족스러웠고 불만이 많았다. 특히나 나의 엄마를 볼 때면 정말 말릴 수도 없을 정도로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를 보고 느꼈다. 아, 저 사람은 관계를 끊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정도로 심했다. 물론 두 분 다 사이비를 다니는 것이 아니기에 내 판단은 신경을 끄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가장 큰 사건은 할머니와 엄마가 죽어가는 아빠를 3-4시간 동안 제사 지내듯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찬송을 부르는 행위였다. 그걸 보고 안 그래도 없던 기독교에 대한 아주 작은 불씨들이 사라졌다. 그걸 멀리서 지켜보는 나는 "아빠가 너무 힘들어하고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하니까 그만해라. 할머니도 그만 오시라 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지금 의지할 곳이 그분밖에 없다며 고통스러워하는 아빠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그렇게 했다.


나는 아빠가 고통받는 것이, 고통받는 표정이 너무 싫어서 아빠가 싫어하는데 안 그래도 아픈 사람한테 저러는 거 진짜 죄라고. 나중에 벌 받는다고 엄청난 화를 내면서 이야기를 해봤지만 돌아오는 말은 "내가 당장 과부가 되게 생겼는데 그냥 손 놓고 기다리라는 거냐?"라는 말이었다. 그 말도 맞는 말이라서 더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런 과정들을 겪으니 기독교가 치가 떨릴 정도로 싫어졌다. 온전한 거부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전부터 불교에서 가리키고 신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봤다. 남들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남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꽤나 냉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법륜스님의 강연을 보고 어느 정도 깨달았다.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해지지 못하고 어른스러워지지 못하고 마음이 약하고 어느 순간에도 휘둘리는 가벼운 사람이 된 것은 나와 맞지 않는 종교를 선택했기 때문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기독교가 세상에 불신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기독교 그 자체로도 굉장히 holy 한 집단이고 불교도, 천주교도 기타 다른 종교들도 모두 다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맞지 않는 옷을 강요하고 억지로 입히고 세뇌시키려고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제목은 불교를 믿지 않았다이지만 글을 쓰다 보니 기독교를 믿지 않게 됐다라는 내용을 쓰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어찌 됐던, 나의 취향과 정체성은 기독교의 정체성보다는 불교의 정체성이 더 맞는 것 같다. 이 말을 가족들에게 하거나 이렇게 글로 흔적을 남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벌을 받는다는 불안함이 있다. 어렸을 때 오죽 그런 세뇌를 받았으면 그런 걸까 싶기도 하다.


속상하다. 다른 종교라고 모든 것을 배척하고 우리가 따르지 않으면 널 배척하겠다는 말들과 행동으로 대한다는 것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자유의 권리가 있고 종교 선택의 권리가 있다. 이 생각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서른한 살이 된 지금에서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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