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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18. 2022

#90. 수면 호흡

나는 자면서 호흡이 너무 가빠짐을 느낀다. 보컬을 조금 배워서 그런가 호흡이 일반인보다는 깊은 편인데 그렇게 깊다 보니 자면서 쉬는 숨이 너무나도 깊다. 모르겠다. 잠을 자면서 숨을 깊게 쉬면 그 뒤에 따라오는 호흡을 쉬는 것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그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결국 잠을 못 잔다.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 어떤 느낌인지는 듣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고통을 판단할 수는 없다. 나는 가히 초등학생 때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그래서 그런지 잠을 못 잔다는 단순한 행위에는 불만이 크게 없는데 잠을 자면서 머릿속이 계속해서 꿈으로 투영되는 것이 너무나도 불안하고 나를 절벽으로 내몰아간다.


분명 나는 잠을 자고 있음에도 수면 시 호흡을 길게 들이마시면 길게 내뱉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꾸만 호흡의 부족함을 느끼고 점점 숨을 오래 참았을 때 느껴지는 그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이 혹은 다음 호흡을 하기 위해, 호흡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발판이 점점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잠을 자면서도 호흡이 부족하다는 걸 머리로 느끼고 그때마다 자꾸만 나는 깬다.


괴롭고 고통스럽다.


잠을 못 자는 행위는 그냥저냥 버틸 수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현실적으로 증상들이 나타나니 정말 죽어버리고 싶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들이 나에게는 필요가 없다. 수면욕도, 식욕도 모두 좋아하지도 않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죽고 싶다는 말은 충동적이지만 그동안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기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고 어둡고 괴로운 삶을 살았다. 너무 고통스럽다.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서 행복한 결말이 있을까. 죽음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한 행위가 또 있을까. 나는 적지 않은 나이에 아빠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가 누리고 살고 있는 삶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갔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니까, 죽는다는 것이 정말 죽는다는 게 아니라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고귀해서 다른 차원이든 다른 세계이든 어떻게든 이승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기독교를 다니면서 배운 감정들도 아니고 사상도 아니다. 그냥, 나는 어려서부터 죽음에 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꿈은 서른 살에 죽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른 살을 넘긴 지금도 어떻게 살아가고는 있다. 그런 걸 보면 죽으라는 사람 없고 살아가라는 사람 없는 것 같다. 나의 아빠가 생각보다 이르게 삶을 마감했던 걸 보면.


죽고 싶어! 죽음만이 날 구원해주는 행위야!라는 말을 떠벌리고 다니고 싶지는 않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감정이 어떨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런 말을 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요즘 들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욕구들에서 누리지는 못 할 망정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어 주변 모두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면 나 하나만 사라진다면, 내가 없었더라면-하는 상상을 자주 하게 된다.


당장 죽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가 몰랐던 세상의 흥미로움이 새로 생겨났고 나는 아직도 글을 덜 썼기 때문이다. 글을 1,000개가 되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현실로 이룰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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