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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23. 2022

#95. 죽고 싶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왜 이리도 어려운 일인 걸까. 마치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사회성 스킬을 타고나야만 하고 사교성의 스킬을 타고나야만 하는 사람들만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인 것 같다.


나는 브런치를 시작할 때의 마음도 그 이전의 마음도 약한 사람을 돕고 싶었다. 힘들지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친구들을 마주할 때면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마음 안에 있는 무게와 불안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려고 노력했다. 실질적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도움을 준 적은 없지만 그들의 일회성, 휘발성으로 나를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갈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당신은 이런 강점이 있으니 자살하면 안 되고 그만두면 안 된다는 말들.


나 자신에게 해주지 못 한 말들을 남에게 해주는 나를 보는 나는 얼마나 괴로울까. 얼마나 힘들까.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면 나는 나 자신을 오롯이 돌보는 일이 없을 텐데 나는 왜 나 자신을 싫어하고 나를 돌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걱정을 한다. 남은 그렇게나 신경 쓰고 리소스를 항상 쓰면서 지키고 신경 쓰고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왜 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리소스를 쓰지 않으려는 걸까.


나 자신이 이 세상에, 이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나 하나의 존재를 바쳐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바뀐다면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 정도는 주는 것이 좋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생각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남들 모르게 죽고 싶은 마음도 절실하게 든다. 죽는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다른 저승의 삶을 살아보려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죽고 다른 세상으로 떠나간다면 그 세상에는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존경했던 나의 아버지가 있을 것이고, 술을 그렇게 좋아해서 나랑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마셨던 막내 삼촌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죽음은 슬픈 일도, 무서운 일도, 혐오스러운 일도 아니다. 죽고 싶다고 말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이고 충격이고 무서운 말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죽고 싶다는 말은 온전히 해방된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말이 사회의, 회사에게, 모든 경우에 좋지 않은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더 열과 성의를 다해 이 결말을 맞이하고 싶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좋아했고 존경했던 만났던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빌어주는 것이 나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일이니까. 나의 죽음으로 그들의 앞길을 축복해줄 수 있다면, 그들의 앞길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슬퍼하겠지만 그들의 미래도 나의 죽음으로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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