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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23. 2022

#96. 글과 현실의 경계

글을 쓰다 보면 문득 '저 사람 위험한 것 같은데 어떡하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지인에게 브런치 주소를 알려주고 난 뒤, 글을 이따금씩 보면서 연락이 오곤 한다. 괜찮냐는 연락이 올 때마다 뭔가 미안했다. 그들의 삶을 그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침범하려고 글을 쓴 것은 아니었는데,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자 글을 자극적으로 쓴 것이 아니고 거짓을 보태서 글을 쓴 것이 아니었는데 알게 모르게 그들의 감정을 조금씩 갉아먹는 것 같다. 나의 브런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그럴싸하게 철학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글을 쓰면서 항상 생각하는 것은 글을 써 내려가는 그 시간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나로 살고 있으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나와 글을 쓰는 순간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현실에서 스트레스받고 고통받는 것을 글로 쓸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오래전 경험들을 바탕으로 글을 쓸 때가 더 많은 것 같은데 그것은 정확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감정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스탠스가 필연적인 것 같다. 내가 정말 죽고 싶어서 죽고 싶다는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 그런 생각을 들게 했을 뿐이었던 것 같다. 글을 쓰지 않고 텍스트를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들, 무딘 사람들은 이 경계를 인지하지 못한다. 단순히 저 사람이 정말 죽고 싶은가 보다-하면서 현실을 살고 있는 나를 걱정하거나 한다.


그냥, 글을 쓰는 행위는 나 자신의 리소스를 덜어내고자 하는 나만의 방식일 뿐이고 그것이 현실의 나를 조종하거나 해치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한 번쯤은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나는 정말 괜찮은데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와 비참한 감정들이 모든 것을 이루어 글로써 표현되어 휘발되는 것뿐이지 이런 글 자체가 나 자신을 조종하거나 하지 않는다. 뭐, 정말 힘들면 글을 쓰지 않고 어떻게 서든 도피하려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글을 쓰면서 이 경계를 어떻게 구분 지어야 할지 나조차도 모를 때가 많다. 정말 힘들어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어서 글을 쓰는 건지 혹은 쌓인 감정에 기반해 휘발시키고 싶어서 글을 쓰는 건지 모를 때가 있다. 착각할 때가 있고 나조차도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살아가고 있는 걸 보니 글을 쓰는 나와 현실세계의 나는 아직까지 잘 분리되어있는 것 같다.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갈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지는 않지만 걱정만 쌓여만 간다.


으, 본캐 부캐도 아니고 이게 뭐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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