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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24. 2022

#97. 비 그리고 장마

비가 온다. 아니 이제 곧 더욱더 많이 내리겠지. 나는 비가 좋다. 하지만 우산은 싫어한다. 손에 무언가 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 비는 좋은데 우산은 싫다. 참 역설적이다. 심지어 비를 맞는 것도 좋아해서 우산이 있음에도 구태여 우산을 꺼내서 펼칠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누가 봐도 백팩 옆구리에 꽂혀있는 3단 접이식 우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비를 맞는다. 비를 맞는 게 왜 좋은지는 모르겠다.


나는 햇빛 알레르기를 앓고 있어서 햇빛이 쨍한 한여름날의 날씨를 싫어한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이면 알게 모르게 나는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다고 해서 일을 안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 그럼에도 나가서 일을 하면 그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내 모든 기운이 햇빛에게 빼앗기는 기분이다. 기력이 빨린다.


그래서 난 비가 오는 날이 좋다. 장마철의 날씨를 가장 좋아한다. 비가 오고 비바람이 부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도 창밖은 비가 쏟아지고 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진다.


내 마음이 무너지는 것만 같아서 퇴근길에 비를 맞으면서 왔다. 그 무수히 내리던 비를 온몸으로 느끼니 내가 비로소 처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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