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려서부터 아빠가 매일 약주를 하고 들어오곤 했다. 아빠는 사업을 하던 사람이고 회사 생활이 맞지 않아 사업을 시작했다고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었다. 30년 정도를 영업맨으로 살아왔다고 하니, 그 고단함과 고달픔이 얼마나 심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아빠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2월 25일 세상을 떠나셨고 원인은 간 경화로 상태가 심각해지고 간이 점점 굳어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빠의 상태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20년 가을 초입부터 몸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낀 것 같다. 사실 아빠와의 접점이 그렇게 많지 않은 나라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집에서도 아빠는 나보다 누나를, 누나보다 본인의 동생들을 더 챙기던 사람이었다. 아빠를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가족을 책임지던 아빠였지만 아빠가 사라지고 나서는 집안 전체가 휘청거렸고 이내 무너지기까지 했다. 친척들과의 접점은 모두 다 사라졌고 아빠와 연결되어 있던 사람들은 모두 관계가 끊겨버렸다. 정말 웃기지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부터는 친척들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행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빠가 엄마 몰래 해왔던 일들을 나열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아빠가 밉다. 아빠라는 단어가 언제쯤 친근하게 느껴질까 모르겠다.
친할머니는 아빠를 살리겠다고 집 안에서 아빠를 데리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그 광경이 지켜보는 나조차도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마치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듯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쉴 새 없이 계속 진행되었고 그 끝을 모를 정도로 계속됐다. 결국 아빠는 말을 할 힘도 소진이 된 상태라서 보다 못해 내가 이야기를 했다. 엄마랑 할머니가 그렇게 한다고 아빠 병이 고쳐지는 거 아니니까 아빠 고통스럽게 하지 말고 편하게 있게 해달라고 할머니 집에 그만 오라고 하라고 했는데도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노발대발하며 네까짓 게 뭘 아냐며 오히려 더욱더 소리를 쳐대곤 했다. 하긴, 집안의 기둥이 본인의 남편이 당장 죽게 생겼는데 믿고 있던 종교에 의지하는 것이 이제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아빠 상태는 너무나도 좋지 못했다.
응급실에 실려가던 날, 한창 코로나가 심해지던 기간이라 응급실에 한 사람밖에 들어가지 못했고 지켜보는 것도 한 사람밖에 있지 못했다. 내가 주도해서 자리를 지키면서 아빠가 해오던 사업, 진행해오던 프로젝트가 중간에서 끊겨 거래처도 애매한 상황이었고 나조차도 어떠한 말로 어영부영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찌어찌 해결하고 상황설명을 했다. 터진 일은 매듭지었지만 아빠의 상태는 날로 더 악화되어갔다. 심지어 응급실에서 입원병동까지 가는데 일주일 좀 안되었던 것 같다. 입원병동에도 환자들이 너무 많아 입원할 수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들었고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가족들은 점점 지쳐만 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병동에 자리가 나서 옮긴다고 하고 일사천리로 병동으로 이동했다.
입원병동에서의 3일. 그렇게 아빠는 우리를 두고 먼저 떠나버렸다.
끝없이 버티려고 꺽꺽-대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 혹은 발악이었지 싶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느낌이 보는 사람들마다 똑같이 느꼈다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교대를 하고 인사를 하고 다들 병원 건물에서 나올 때면 엉엉 울면서 나왔다. 뭐 이렇게 자세히 쓴다고 누가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더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해두는 게 나를 위해서도, 아빠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물론 모두가 보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쓴다는 것은 조금 마음 아픈 일이지만.
나는 사실 아직까지도 실감 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아직까지도 한 가정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괴리감이 더욱더 심해진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부단히 정말 열심히 노력했던 결과가 결국 죽음이라는 것에 다다른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그 사태를 보고 나도 정신을 차려서 술을 줄이거나 간에 무리를 덜 주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아서 술을 끊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나한테 술은 너무나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끊을 수는 없다지만 이렇게 한 번씩 아빠 생각을 할 때면 자체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리곤 한다. 아, 나도 조금은 조심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빠는 우리 가족에게 안정과 소나무와 같은 든든함을 주었지만 행복을 주지는 않았다. 엄마와 나에게 빚을 너무나도 많이 안겨주고 간 사람이다. 어찌어찌 해결은 했지만 그 과정이 절대 순탄치 않았다. 트라우마도 너무 심했고 아직까지도 정신적으로 온전한 상태가 되지 않았다. 마음 한편은 항상, 매일 텅 비어있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없다는 사실이 꽤나 고통스럽다. 아빠를 좋아하거나 존경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아빠라는 존재가 사라졌다는 공허함이 생각보다 꽤 크고 오래가는 듯하다. 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아빠 나이가 되려면 33년이나 남았다. 앞으로의 33년 동안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정말 아빠처럼 비명횡사하게 될지, 누구보다 건강하게 더 오래 살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