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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26. 2022

#100. 본인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면서요?

나름 브런치에 입성한 후 100번째 글은 심도 있거나 비중이 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100번째 글이라는 부담감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유튜브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던 생각은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주제를 100번째 글로 쓰고자 하는 이유는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이 말에서 비롯된 것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왜?라는 물음도 물론이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라는 물음도 함께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나보다 나은 사람을 좋아하진 않는다. 물론 배울 점도 많겠고 그 사람을 멘토로 삼는다면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고 귀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나보다 부족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부족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포괄적이라 한정 지을 수 없겠지만 감정적으로 결여된 사람을 좋아한다. 항상 즐겁고 행복하고 모든 것을 다 꿰고 있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마음이 가질 않는다. 그렇다고 순수하고 백치미를 곁들인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 애매한 감정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감정을 좋아한다. 그 감정은 우울감과 위태로움, 불안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일 거다.


나는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말보다는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 더 호의적이라는 말이 맞겠다. 본인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과의 교류 맺는 것을 좋아한다. 대개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감정에 솔직하지 않은 사람들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느꼈다. 거짓말로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나는-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조금만 대화해보면 안다. 이 사람이 사회적으로 찌들어 가면을 쓰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 가면이랄 것도 없고 본인의 모든 것을 내어줄 것처럼 본인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내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청취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람의 아픔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의 아픔과 슬픔, 무너짐, 불안, 우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의 사람들과의 소통이 너무나도 어렵다. 하지만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수자를 위한 마음은 간직하고 있지 않다. 간직하더라도 그들을 위해 시간을 쏟거나 감정을 쏟는 일은 많이 없다. 내가 그렇게 겪어봐서 알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남들에게 관심은 가질 수 있지만 남들이 가지고, 겪고 있는 감정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냥 가볍게 "아, 그랬어?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말로 허울 없는 말로 위로는 해줄 수 있겠지만 결국 그런 말들을 듣는 사람은 가볍지도 않고 온 마음으로 이 사람이 나에게 집중해주고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접근한 사람의 마음으로서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브런치의 100번째 글에 너무나도 큰 비중을 두고 싶었다. 사실 냉정하게 말을 하자면 100번째의 글은 아니다. 이미 110개의 글을 넘겼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지만 #을 붙인 이후로 쓴 글의 100개를 기념하고 싶어서 최대한 집중하고 리소스를 들이부어 퀄리티가 괜찮고 남들이 읽어도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아직까지도 나는 그런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1,000개의 글을 쓰기 전까지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로 했고 어떤 방식으로든 1,000개의 글을 쓰기로 나 자신과 약속을 했지만 이제야 100개의 글을 썼을 뿐이다.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의 성격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그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좁긴 하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 세상이 도래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비주류의 글이라며, 비관적인 글이라며 무조건적으로 배제당했을 것이고 이 세상에 아직까지도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무너진 사람은 없기를 바라지만 혹, 그런 사람들이 나의 글을 발견하고 볼 수 있다면 그들의 삶도 응원받아야 하고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싶다. 누군가가 사랑하지 않더라도, 세상에서 무너지고 소외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들을 응원해주고 싶다. 그런 이유로 브런치를 시작하고 세 번이나 떨어졌음에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100번째의 글을 쓴 나를 칭찬한다. 앞으로 갈 길은 멀겠지만 천천히 차근차근해보자. 1,000개의 글이 아니라 300개, 500개의 글에서 그만두어도 괜찮으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 다들 처음은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부담 가지지 말고 뭐든 하나씩 차근차근해보자. 


나도, 너도.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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