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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26. 2022

#99. 나 자신의 존재

문득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을 숨기면서 괜찮은 척을 하면서 살아가고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옳은 일인지, 나 자신을 오롯이 모두 나타내면서 솔직함을 어필하는 것이 이 세상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mz세대라는 말이 생겨난 이후부터는 자기 자신의 시간과 본인이 느낀 의견을 아무렇지 않게 표출할 수 있고 내세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mz세대인지 아닌지 아직 정하지는 못했다. 너무나도 애매한 나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죽음에 대한 고찰을 생각보다 딥하게 하는 편이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생각이 동일시되는 사람과는 이런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나누곤 하는데 결국 나 자신은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이유로 결정을 내리지는 못한다. 사실 나는 아빠의 사태를 겪고 난 뒤,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고 정립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지병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거나 본인의 의지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결국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큰 짐이 되는구나라는 것을 겪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홀로 사업을 일구신 분이지만 그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가족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괜찮아. 내가 도울게"라는 말로 매 순간 넘어갔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죽음을 맞이한 후 각 부처에서 날아온 징수 관련한 우편물은 우리 가족을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오천만 원, 팔천만 원 등 가지각색의 우편물이 우리 집을 폭격했다. 폭격했다는 말은 사실 조금 격하긴 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죽음에 대해 조금 더 딥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옳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어른들이 항상 이야기를 하는 "너는 올바르게 자라야 한다."라는 말을 나는 잘 듣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출이 없고 빚이 없는 상태라면 만족하는 것이 맞을까 싶기도 하면서도 올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200만 원조차 받지 못하면서 일을 한다. 그러면서 무슨 미래를 바라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정말 사랑하는 동반자인 여자 친구가 있지만 함께하는 것과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너무나도 심하다. 그것이 매일매일 나 자신을 무너뜨린다. 200만 원이 꽤 안 되는 돈으로 집을 사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걱정과 불안들이 나를 집어삼키곤 한다.


나는, 나 자신의 존재는 과연 이 삶과 어울리긴 할까. 나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치부해야 하는 걸까. 나의 우울증과 무너지는 행위가 이전보다 많이 사라졌다고 해도 나는 이 생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든다.


나는 이 삶과 어울리는 사람일까. 그런 존재일까. 나는 돈을 벌어도 쓸 줄 모르는 사람인데 이런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는 걸까라는 고민과 불안감이 나를 집어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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