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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l 20. 2022

#. 죽음이 이상한 게 아니잖아요

죽음이 이상한 것이 아니잖아.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났으면 겪어야 하는 본질적인 문제이고 아픔과 병, 질환과 스트레스로 인해 언제든 맞이할 수 있는 것이 나는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들은 죽음이라는 것에 회의적이다. 왜 죽어야만 하는가? 왜 죽음은 도래하는 것인가? 죽음을 평생 미룰 수는 없는 걸까?라는 글을 무수히도 많이 봤다. 나는 나의 글을 제외하고 남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 미쳐있는 주제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최근 내가 좋아하는 주제는 죽음이다.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피해 갈 수 없다.


나는 죽음이 꽤나 멋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생명을 마무리 짓는다는 것, 한 사람의 끝과 마지막을 본다는 것이 너무나도 메리트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 때는 도깨비의 저승사자를 보고 정말 저런 사람이 있다면 멋있겠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현실세계의 죽음은 누구라도 맞이할 수 없고 죽음 직전의 기억을 소각시켜주는 따듯한 저승사자의 tea도 없다.


죽음이 뭐라고, 죽음을 경험해보고 싶다.


나는 31년을 살아오면서 (제대로 살아온 날은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했을 테니 10살, 혹은 13살이 된 이후가 되지 않을까) 인간의 죽음을 꽤나 다양하게 겪은 것 같다. 아빠의 친척인 막내 삼촌이 늘 술을 좋아했고 날 것을 좋아했는데 언젠가는 참치와 술을 함께하는 술집을 운영하다가 그 참치를 먹고 패혈증이 생겨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의 아빠는 영업맨으로 살아온 시간부터 개인 사업을 하고 하나의 대학교로 납품하는 무언의 A 교수를 알게 된 이후부터는 아빠의 삶이 달라졌다. 교수를 위해 밥을 싸고, 운전을 해주고, 선물을 주기적으로 주고 술 접대를 꾸준히 하고 엄마에게도 해주지 않은 미역국을 가져다 바쳤다.


그렇게 나의 아빠라는 사람은 세상을 이겨내려고 했다. 살아가려고 했다. 가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아빠의 실질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부 상주가 아닌 상주가 된 나날들이 아직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고, 잠도 내 마음대로 잘 수 없는 상황들이 괴로웠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경험이 나쁘지는 않았다. 싫지만은 않았다. 아빠를 떠나보냈지만 아빠를 기리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로 인해 장례식을 치르는 장소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늘 시끌벅적했다. 새벽 4-5시가 되는 시간에는 혼자 장례식장 구석으로 술 서너 병을 가지고 가서 아무런 안주도 없이 먹었을 뿐이다. 오롯이 잠을 자기 위해 먹었다. 취하지도 않았고 취하는 느낌마저 받을 수 없었다. 내가 그곳에서 마시는 술이 아빠에게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죽음에 관해 관대하다.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통보 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남아있는 엄마와 누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사회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래 버티지도 못하는 내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속상하지만 이것이 나의 업보일지도 모른다. 타고난 기질 혹은 내가 타고 난 사회적인 결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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