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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Aug 10. 2022

문득

얼마 다니지도 않은 회사를 퇴사하려니 마음이 갑갑하다. 또다시 일을 알아보며 이리저리 휘둘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이사 문제에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에 인생의 목표마저 점차 흐릿해지고 있는 것 같다.


돈, 그놈의 돈이 뭔지 사람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은 나는 왜 그놈의 알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기저기서 치이고 난 뒤에는 항상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찾아오는 게 알바몬이었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아직까지도 알바몬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게 문득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하다. 남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는데 나는 이리저리 치이면서 한 곳에 정착을 하지도 못한다는 게.


나는 어려서부터 가정주부가 꿈이었다. 집에서 팔자 좋게 먹고 놀겠다는 뜻이 아니라 집안일을 하고 내 속도대로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는 게 나에게는 그렇게 잘 어울리는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고 싶은 것은 명확했다. 가정주부도 되고 싶었고 그 이후엔 심리상담사를 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목표였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한 때는 너무 괴롭고 우울감이 내 온몸을 잡아먹어 동네 심리상담소나 정신과를 찾아가서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지만 초진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앞선 예약들이 너무 많아 올해는 상담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겨우 찾은 곳은 고용노동부의 상담센터였다. 심지어 거기도 예약제로 운영되었고 한 시간 정도 상담을 총 8회를 받는 일정이었다.


총 8회 상담을 다 받고 나서 든 생각은 역시 국가에서 지원하는 사업은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확신을 받았다. 이 상담을 받기 전까지는 구청에 있는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갔는데 퇴근시간이 가까운 시간에 찾아가서 그런지 상담을 해주는 공무원은 너무나도 심드렁하게 이야기를 들었고 그건 선생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말이었다. 상담을 받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저물어가는 노을을 옆에 두고 그딴 소리나 듣고 있었다는 게 그리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듣자고 문진표를 작성하고 대기하고 결국 찾아온 곳이 구청의 심리상담센터라는 것도 참 웃겼다. 그때는 돈이 없어서 병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차선책으로 찾아갔지만 역시 예상대로 최악이었다.


우울감이 심한 사람들을 보면 생명의 전화나 그런 맥락의 국가에서 지원하는 창구가 있는데 하나같이 쓸모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런 글들을 보고 자랐어서 그런지 국가가 운영하는 어떠한 사업도 별 관심이 없고 감흥이 없다. 정말 힘들어서 찾아간 사람한테 왜 죽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는 꼴이라니 참.


무심코 알바몬을 켜다가 찾아온 허탈감에 쓴 글이 이렇게나 몰입해서 쓸 일인가 싶기도 하다. 도대체 내 머릿속엔 몇 년도의 기억까지 저장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문득 글을 몰입해서 쓰다 보면 내가 기억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글을 언제까지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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