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pty Aug 30. 2022

마음의 여유는 늘 다른 곳에서

늘 그랬다. 늘 다른 곳에서 마음의 위안과 위로를 받았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속한 집단에서는 내 생각이지만 수많은 부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롯이 나만의 생각이고 집단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은 부품이 아니라 회사의 기둥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일까. 나는 이것이 어느 정도의 피해의식의 폐허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수만 가지의 부품 중 하나라고 느낄 때도 있을 것이며 나 자신을 회사에서 없어선 안될 존재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 그래서 나는 전자의 생각으로 부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거겠지.


남들이 다 이렇게 생각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은 생각이 무척이나 많고 생각의 고리를 끊어낼 수 없는 사람이라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계속해서 자라난다. 잡초처럼 제거를 해도 또다시 무수히 자라나는 잡초처럼 나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들이 너무나도 많고 끊임없고 끊어낼 수 없다. 심지어 나는 글을 쓸 때 '생각한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거진 말 끝마다 그렇게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생각하기에 달린 것 같은데 나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싫다. 한 번은 너무나도 의기양양하고 자신 넘치는 모습과 자만의 경계에서 허덕였을 때 번아웃이 온 적이 있었다. 나는 자만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끝도 모르게 날뛰는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난 뒤에는 억지로 나 자신을 억누르고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런 사람이 되었지만 늘 마음의 여유는 다른 곳에서 불현듯 찾아온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의도치도 않은 엄청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그리고 믿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낄 정도로 상처를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나는 오늘 돈을 주고도 느끼지 못할 감정들을 느꼈다. 그리고 내 생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사함을 느꼈다. 이 위로들 덕분에 나는 마음이 다시 정화됨을 느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로와는 별개로, 집단과는 별개로 나에게 위로를 건네어주고 마음을 어루만져준 그들을 더 아끼고 더욱더 마음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


외로운 나날들의 마음들이 오랜만에 가득 찼다.

작가의 이전글 애드센스를 거절당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