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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Sep 05. 2022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담감이 없을 줄 알았다. 어려서부터 나에게는 일기를 쓰거나 무언가를 적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늘 책에 필기로 가득했다. 그것은 낙서가 아니었고 선생님이 하는 말을 고스란히 적고 따라가기 바빴다. 그때는 왜 그게 그렇게 재밌었는지 몰랐다. 책 끄트머리에 선생님이 해주시는 말씀을 하나하나 적어가고 밑줄을 치고 형광펜으로 긋다 보면 사실 수업을 따라가질 못한다. 이게 수업을 듣는 건지 공부를 하는 건지 책을 새롭게 꾸미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사실 실용음악과를 졸업하기 전, 그러니까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시점부터 실용음악과에 더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군대 생활이 너무나도 힘들어서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발표를 하는 것이 싫어졌다. 누군가에게 말을 먼저 거는 것도, 그냥 누군가의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이 불편했다. (군대에서 실용음악과라고 이야기를 하니 다들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사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너 절대 그 과 나왔다고 하지 마. 그럼 너 엄청 피곤해진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몰랐다. 그렇게 피를 보고 나서야 아, 이래서 말하지 말라고 했던 거구나 깨달았으니 나는 삶 전반적으로 속도가 느린가 보다.)


복학을 하고 정말 어영부영 1년을 더 다니고 졸업을 했다. 사실 학교를 공부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등록금을 내고 같이 술을 마실 친구를, 대학생의 술자리는 끊기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던 시기였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내가 무언가라도 더 열심히 살거나 다른 것을 해보려고 노력했다면 지금 나의 삶은 조금이나마 바뀌어있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은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쓰고 크립토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내가 프로젝트를 맡아 리드하고 싶지만 사실 나에게 그런 인맥도 그런 실력도 갖추지 않았다. 그래서 늘 생각만 하고 머릿속에서 그리기만 하고 포기하곤 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 내가 생각했던 프로젝트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다. 늘 그래 왔던 것 같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렇다 할 글쓰기 어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플랫폼을 만들고자 생각했지만 이것을 이룰 수 있는 소스들이 없기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탓인지 내가 가진 소스가, 능력이 부족해서 구체적인 것을 만들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냥 소비자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또 글을 쓴다. 하지만 이 글을 쓴다는 것이 굉장한 부담감으로 작용될 때가 있다.


나는 나만의 시간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퇴근하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내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을 더 좋아라 하지만 핸드폰으로 쓰면 어느 정도 글이 짧기도 하고 나의 생각을 모두 적어 내려 가기 어려워서 핸드폰보다는 노트북을 선호하지만 나의 패턴이 항상 같을 수만은 없기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길어질수록 브런치에 다시 들어오는 것이 망설여진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한 미안함일까 눈치일까. 항상 고민한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이 글을 썼지만 내가 그동안 써왔던 글들이랑 문맥이 비슷하거나 느낌이 비슷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도 항상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도 많고 걱정도 많고 늘 날카롭고 예민하다. 최근 주변 지인이 사주를 봐줬는데 나는 우여곡절 끝 결국 성공할 것이라는 사주가 있다고 했다. 이 글은 조만간 생각 정리를 해서 다시 써야겠다. 프롤로그를 적어보자면 나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스무 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교회를 다녔던 것까지 치면 고스란히 20년이란 시간을 기독교인으로 보냈다. 그래서 사주는 우리 집에서 항상 금기시되는 단어였고 타로, 점 그리고 어플에서 하는 간단한 테스트들까지도 싫어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교회라는 것을 빼니,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그리고 사실 나는 불교가 추구하는 정신들이 나와는 더 맞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사주라는 것을 봤는데 이렇게 잘 맞을 수 있다는 것에 너무 소름이 돋았다. 사주를 보고 듣고 이렇게 되겠지? 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놓인 상황이 생년월일 하나만으로 유추가 가능하다는 게 너무나도 소름 끼쳤다. 심지어 태어난 시간은 말하지도 않았는데 이름의 뜻풀이까지 겸한 정보가 있었다.


가령, 성공하기 위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주 내용과 내 이름의 풀이가 딱 떨어진다거나 하는 게 너무나도 소름 끼쳤다.


이 글은 조만간 정리해서 다시 쓰는 걸로 해야겠다. 글을 쓰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귀한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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