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제목은 없고요, 그냥 하루하루 끄적이는 것이 일상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어떻게들 버티는 걸까. 아니 그들은 버틴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암묵적으로 버텨야 하는 삶이니까 버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그런 말들을 들으면 참 아이러니하다. 굳이 정형화된 틀에서 이렇게 해야 해, 저렇게 해야만 해. 하면서 틀에 갇힌 생각을 한다는 것이 지금도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그런 말과 행동, 생각을 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어려서부터 그런 게 눈에 너무나도 잘 띄었던 나는 그래서 친구가 없다.
그런 사람들과 친구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더욱더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고 친구라는 명목으로 욕을 하고 편하게 남을 깎아내리면서 즐거움을 만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그런 관계가 너무나도 싫었다. 지긋지긋했다. 그때는 참고 말 안 하고 숨기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주위를 살펴볼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을 때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녔음을 깨달았다.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를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고 의사표현을 제대로 정확하게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너무나도 뒤늦게 깨달았다. 20대 초반이 아니라 중후반이 되어서라도 그 간단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의 삶은 조금이나마 변화되는 것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성숙하고 어른스럽게 생각했더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더 명확해졌을 텐데 그게 가장 아쉽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나에게 남 탓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고 가르쳤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일방적인 남 탓을 심각하게 했다. 어디가 아프다거나 이상이 있다거나 기분이 상하면 전부 엄마 때문이야!라고 이야기를 해댔는데 엄마는 그게 그렇게나 싫었나 보다. 아직까지도 남 탓을 하려고 하면 엄마의 말이 생각나는 걸 보면 아주 혹독하게 혼내면서 각인시켰던 걸지도 모르겠다.
공자나 맹자, 부처가 아닌 이상 모든 것을 깨우칠 수 없고 배우지도 못한다.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많을 뿐이고 문제가 많을 뿐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냥 일상적인 하루 일기를 쓰는 편이 좋겠다. 에세이란 거창한 단어를 들먹거리면서 괜히 있어 보이는 척, 고상한 척, 유식해 보이는 단어들을 그럴싸하게 나열하여 글을 억지로 만들고 싶지도 않다. 그냥 키보드 자판에 이끌려 손가락이 움직이는대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싶다.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텍스트로, 글로 풀어내고 적어내는 것이 나에게 더 어울린다는 것을 꽤 늦게 알았다. 매 순간 긴장을 심하게 하는 편이라 이미 군대에서부터 목 뼈가 활처럼 휘어있어야 하는데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있다고 했다. 거기에서 오는 두통이 군대에 있을 때 나를 너무 괴롭게 했다. 군대는 군대였던 걸까. 목 뼈가 이렇게 굳어있다고 하니 물파스와 붙이는 케토톱 같은 파스를 쥐어줬다. 그래, 목 주변에 빨간약을 발라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싶다.
말을 하는 것보다 생각을 정리해서 완벽한 텍스트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가지런하게 정렬되어있는 텍스트나 문장을 보면 괜히 마음이 차분해지고 따듯해지는 것 같다. 그 내용이 어떻든 그 자체만으로도 참 귀한 경험이 되는 것 같다. 글을 쓰는 행위나 글을 써서 누군가와 함께 본다는 행위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아니 즐거운 건 아니고 그냥 대체로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