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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Sep 19. 2022

내가 좋아하는 새벽

나는 어떠한 시간대보다 새벽이 좋다. 새벽이 좋은 이유는 단순하다. 새벽이 찾아오는 그 시간과 조용하고 어둡고 아무도 없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좋다. 마치 나 혼자 살아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주변의 상점들은 모두 영업을 종료하고 나 혼자만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이것은 비단 내가 그들보다 우월감이 높다는 것 따위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나의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감정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 기분이 좋은 것도 좋은 것이지만 나의 속박을 푸는 느낌이 들어서 더 좋다.


새벽을 참으로도 좋아한다.


사계절이 있어 해가 빨리 뜨고 늦게 뜨는 것을 항상 주시해야 하는 것도 생각보다 쏠쏠한 재미다. 유튜브를 보거나 술을 마시면서 창밖을 보면 해가 절대 뜨지 않을 것만 같았던 하늘도 어느샌가 해를 머금고 온 세상을 비추는 것처럼 그렇게 신기한 일이 없다. 사실 새벽이 좋은 이유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가 좋다. 홀로 있는 시간이 좋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홀로 겪는 시간들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혼자가 너무나도 싫었다. 조용하고 혼자 무언가를 해나가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고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왜 혼자지? 나는 왜 혼자일 수밖에 없는 거지? 하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다.


나도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고 함께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데 막상 둘러보면 나는 늘 혼자였다. 나의 능력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못해서였을까. 그도 아니면 그 모든 것이 나를 배제한 채 돌아가기 때문이었을까 생각도 든다. 새벽과 맞바꾸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이던 내가 좋아하는 술이던 새벽과는 바꿀 수 없다. 나에게 새벽이 없다는 것은 내가 없다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나의 상황을 날짜와 시간, 날씨로 표현하자면 지금 나는 새벽 2시 25분 정도 되었을 거다. 온 세상을 비추던 태양은 사라져 버렸고 아무도 남지 않고 그 누구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 심오한 새벽의 시간이 나를 표현하는 것 같다. 사실 너무나도 외롭다. 그 시간대에 혼자 있으면 누구를 불러도 연락이 닿지 않고 누군가가 깨어있는 것을 바라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이 나의 시간인 것 같다.


나의 시간에는 아무도 깨어있지 않다. 그저 나 혼자만 깨어 술을 마시고 하소연을 할 뿐이다. 그 시간을 혼자 겪은 게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는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것만이 나를 이해시킬 수 있다. 이 사람이 왜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거지?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구문이다.


나는 혼자가 익숙해져 버렸고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었고 내가 살아온 시간대와 내가 살고 있는 시간대는 아무도 없었고 나를 지킬 사람도,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늘 혼자 이렇게 글을 쓰고 아파도 아프다 이야기하지 못하고 힘들어도 힘들다 이야기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 이유로 그렇게도 잘하던 표현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도 잘하던 애정표현이나 나에게 놓인 상황을 표현할 수 있었던 나는 그 모든 것을 빼앗겨버렸다.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표현을 해봤자, 누군가에게 나 힘들다고 이야기를 해봤자 돌아오는 것이 없었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없었으며 나를 손가락질하거나 되려 나를 욕하는 사람들만 넘쳐났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내 마음이 닫힌 가장 큰 이유는 그거다. 내가 필요로 할 때, 내가 필요로 한 시간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 그것뿐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새벽 깊은 시간에 내 옆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 나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뿐이다. 내 생활 패턴이 이렇기 때문에 누구도 감당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였다. 내 잘못이 너무나도 크지만 그것은 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탓할 수 없다. 새벽 늦게 깨어있는 사람이 나 혼자이기 때문에 나는 누구를 원망할 수도, 탓할 수도 없다. 그저 나 자신을 탓하기 바쁘다. 그것만이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었고 지금도 살아가는 데에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참 바보 같고 슬프고 멍청하고 한심하다. 세상에 나를 맞추기 싫어서 고집부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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