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제목에 숫자를 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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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몰랐다. 내가 이렇게나 체계적인 사람이었는지. 체계적이라는 말보다 와닿는 말이 뭐가 있을까. 계획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나와 맞지 않는 말이다. 음. 확실한 사람?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정사각형에 꼭 들어맞는 사람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어려서 색칠놀이를 하건 그림 상담을 받건 정사각형이나 삼각형, 동그라미에 색을 칠할 때 항상 모서리 끝까지 전부 채워서 그리던 습관이 있었는데 그게 비로소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이해를 조금씩 해나가는 것 같다.


기분이 안 좋으면 무슨 일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지, 갑자기 우울하다거나 정말 인생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물음표에 대한 마침표가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늘 인생을 피곤하게 산다. 에너지 소비는 항상 되고 있다. 마치 대기전력을 계속해서 소비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있다. 몸에서 에너지가 계속해서 빠져나간다.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해서 그 에너지를 내 손으로 잡아둘 수가 없다. 아니 빠져나가는 에너지를 다시 돌릴 수도, 나가지 말라고 붙잡거나 다시 에너지를 주입한다거나 이런 일은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안 그래도 많은 생각들이 요즘 들어 더 많은 생각을 불러들이고 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지친다는 이유로 피로 회복을 '생각' 하기만 한다. 어차피 나는 잠을 자는 것이 회복의 단계를 넘어 고통스러운 단계 혹은 잠을 잘 시간에 다른 것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잠을 자다가 새벽에 괜히 한 번 놀라서 깼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한참을 앉아있다가 다시 누워서 잠에 들고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을 다시 추운 방 안에서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한 채 겨우 새우잠을 자고 또다시 일어난다. 맞춰둔 알람이 8시에 울린다. 그러고 나서 잠깐이나마 정신을 차려서 조금 더 자야겠다는 생각에 9분이란 시간을 다시 알람을 맞추어두고 또다시 잠에 들고 또다시 깬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노래를 틀어둔다. 아니, 잠을 자기 전에 티브이를 실컷 켜 두다가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제야 티브이를 끄고 즐겨 듣는 음악 스트리밍 어플을 켜고 취침시간을 맞추어둔다.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혼자 자고 싶지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음악이 들릴 듯 말 듯하는 상태에서 또 약 기운에 취해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을 한다. 다시 깨는 시간까지의 시간이 아마 약 효력 시간이려나 모르겠다. 그러고 일어나서 다시 잠들기 전까지 들었던 음악을 다시 틀어두고 화장실에서 씻는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방음이 하나도 되질 않아서 옆 집 사람의 기침소리, 흥얼흥얼 거리는 소리, 물소리 등 다양하게 소리가 난다. 그래도 그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눈치가 보이긴 한다. 가장 방음이 안 되는 곳은 화장실이라 집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좁디좁은 화장실이 데칼코마니 형식으로 마주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집에서 살면서 나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아니었다. 대변기의 물이 채워지는 시간까지의 소리가 생각보다 오래가고 꽤나 커서 화장실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있어도 그 소리가 한동안 떠나질 않는다. 그래도 불편함은 없으니까 그냥저냥 아무 생각 없이 산다.


집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 차가운 방에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조용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잠을 청하고 눈을 뜨면 또 혼자인 상태로 음악을 틀고 티브이를 켜고 홀로 외롭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듯하다. 그게 싫지는 않은데 또 마냥 좋지만은 않다.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하지만 내가 지니고 있는 단점들이 단체생활이나 누군가와 함께 살면 분명히 단점으로 작용이 되어 같이 사는 사람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건데, 나는 지금 무언가에 심각한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술에, 약에, 그리고 기타 다른 욕구들에 중독이 꽤 심각한 상태로까지 번진 것 같다. 사실 굉장한 삶의 의욕이 없었던 사람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나의 원동력이 전혀, 절대 생기지 않았는데 논스라는 회사를 만나고 난 뒤 조금이라도 자발적인 형태의 의욕이 생겨난 것은 분명하다. 좋은 사람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에너지와 의지, 그리고 목적지향적인 삶 등 다양한 형태의 의지를 느끼고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한동안 살아왔던 삶이 나에게 꼭 들어맞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항상 그들은 노력하고 무언가 열심히 살고 제삼자인 내가 볼 때, 무조건 성공해서 어떠한 목표를 이루고 말 테다- 하는 형태의 의지나 열정들이 가득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심지어 밥을 먹더라도 그 열정의 온도가 느껴지고 나한테까지 전달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직 온전히 그들의 열정과 온기, 의지를 느끼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고민을 항상 한다. 요즘 지치는 것이 그런 괴리감에서 오는 피곤함과 무기력함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열심히 페달을 밟아 인생을 구축해나가려고 하고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데 나는 그 페달을 밟을 힘이 없고 굴릴 힘이 없어서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는 느낌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을 하자면 그들이 타고 있는 자전거의 뒷자리에 매달려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부족해서 오는 자기혐오가 굉장한 트라우마가 될 것 같다.


그래도 어제는 많이 힘들어했으니까 오늘은 조금이라도 더 힘내서 이겨내야지. 어제만큼 지치더라도 좋은 생각을 한번 더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겠다. 나는 결국 이곳에서 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다. (윙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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