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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Feb 21. 2023

긍정적인 모든 것들이 살아남는 세상

결국, 긍정적인 인간이 살아남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부정적이고 우울한 나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감추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요즘 들어 더더욱 더.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팀원들이 많았다. 한 명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팀원이었는데 그 팀원은 항상 에너지가 넘쳤고 매사에 긍정적이었고 하지 못하는 것보다 할 줄 아는 것이 더 많은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팀원이었다. 일을 잘하기도 하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다. 기계를 능숙하게 잘 다루지 못한다는 건데,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기계를 다룰 줄 모르니 나 좀 도와달라! 알려달라!라고 매우 적극적이고도 긍정적으로 말을 하는 팀원이다. 이 사람을 보면서 '아, 여유라는 것은 정말 저런 사소한 곳에서 나오는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만 보면 무언가 옆에 있고 싶고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도울 일이라도 없겠냐는 둥 자꾸만 말을 걸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단순히 저 사람이 이성적으로 호감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래서도 안되고) 왜 주변에 긍정적인 사람과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두라고 하는 건지 그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감당 가능한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 메이커라고나 할까.


그리고 또 다른 팀원은 입사 날짜가 가장 느린 사람인데 사실 우리같은 스타트업 회사는 입사날짜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보다 한참 늦게 들어온 경력자들이 팀장 직책을 달고 본부장 직책을 달고 하는 것을 보면 크게 신경 써도 되지 않을 부분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존경하고 싶은 팀원 중 하나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니 무슨 회사 대표나 임직원이 된 듯한 느낌이지만 절대 그런 것이 아니고 심지어 나는 곧 퇴사를 한다. 그놈의 스타트업 프로세스와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이렇다 할 베네핏도 없어서 나 같은 중고신입은 적응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팀원을 만난지는 3-4개월 정도 된 것 같다. 내가 11월에 본사 포지션으로 변경된 뒤 만났으니까. 그렇게 만났을 때 처음부터 느낌이 좋았다. 이 사람을 믿어도 되겠구나라는 감정이 들었어서였을까 느낌이 좋았던 것만 기억난다. 처음에 사무실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한 번씩 와서 말을 걸어주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나는 퇴사를 하고 이 팀원은 팀 내에서 팀원들에게 인정받고 업무를 능수능란하고 꼼꼼하게 하기로 유명하다. 본인 피셜로는 실수할 것 같아서 이중 삼중 체크를 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 또한 능력 아니겠는가. 항상 웃으면서 인사해 주고 밝게 장난쳐주는 모습이 참 좋았다. 이런 팀원들이랑 함께해서 너무나도 즐거웠고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 기댈 곳이 언제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차분케 도와주었고 참 많이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회사라는 곳은 순수한 이익을 원하는 곳이기 때문에 나같이 능력이 부족하거나 모자른 팀원을 억지로 끌고 갈 수 없는 곳이다. 물론 나도 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다른 팀원들에 비해 긍정적인 기운이 부족하다는 것도,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것도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서 덜컥 겁을 먹는 것도 나 자신의 단점이 될 수 있겠지. 이런 부분은 한동안 고쳐야 한다고 피드백을 몇 번이고 받았지만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나 자신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듯한 그 말투들이 너무나도 싫었다.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걸진 모르겠지만 일할 곳은 아직까지도 없지는 않고 돈이 중요하다면 다른 일을 해서라도 충당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말 남들이 이야기하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개같이 굴려 다닐 바에는 다니지 않고 나 자신을 챙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퇴사가 나 자신을 챙긴다는 말은 아니지만 회피형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제껏 살아온 나를 보면 한 곳에서 어찌어찌 1년을 버텨 퇴직금을 수령할 수 있을 정도의 기간을 다녔다는 것이 참 놀랍기만 하다. 1개월 아니 1주일을 다니는 것도 힘들어하던 내가 1년을 다니는 곳이 생길 줄이야. 정말 꿈에도 몰랐다. 사실 퇴직금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정말 너무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주변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싫었고 나 자신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도 너무나도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기존 퇴사자들의 조언과 정말 다행히도 상부에서도 먼저 퇴직금 이야기를 해주어서 마음은 편치 않지만 끝날 때까지는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한다. 그게 자의가 되었건 타의가 되었건 상관 없지 않겠는가.


지금껏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게 되면 구직이 이전보다 더 어려워질거라고 생각하고 예상한다. 나이도 다른 곳을 가서 새로운 일을 배우기 어려운 나이이고 나 같은 나만의 세상이 있는 예술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 회사에 소속되어 오래, 꾸준히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앞으로 더 힘들어지고 고단해질 것이라는 것도 알지만 당장 다른 대책이 없다. 무책임하지만 계획적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단 일을 벌이고 나서 생각하는 편이다. 그게 망하는 길이 되었건 성공하는 지름길이 되었건 중요하지 않다. 당장 이 모든 스트레스를 떠안으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살아낸다는 것이 나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제대로 대우를 받지도 못하면서까지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얼른 자야지.


얼른 자고 일어나서 뭐라도 해야겠다. 일하는 것을 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를 하나씩 차근차근 연습을 해본다던가, 글을 조금 더 전문적으로 다양하게 써본다거나 하는 것들을 시도해봐야겠지만 너무나도 빨리 쉽게 지쳐버리고 나가떨어지는 나의 특성상 버틸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게 어디서부터 오는 힘인지는 가늠할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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