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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Mar 14. 2023

술을 끊지 못하는 이유

몇 번이나 끊어보려고 해 봤지만 무의미했다.

술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다양하다. 단순히 술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술을 먹는 것이 하루의 보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술이 이미 중독된 것 같기도 하면서도 하루의 보상이, 하루의 끝이 술이라서 오히려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술을 마셔야만 하루가 온전히 마무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즐길 수 있는 행위들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술로 연명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른 사람들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노래방을 가면서, 오락실을 가면서 혹은 운동을 같이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운동을 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소비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되질 못한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그런 삶을 살지 못해서가 아니라 30대가 되고 난 이후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고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30대가 된 이후 친구를 만들려고 노력해 봤지만 30대는 이미 정형화된 것들에 끼워 맞추기 급급했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얼마나 돈을 벌고 있고 얼마나 오래 일을 했고 친구들과의 사교성 등을 따지기 시작했다. 10대와 20대에 친구들을 만나고 소개받거나 알게 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비유하자면 마치 결혼정보 회사에서 내 정보를 넘겨주고 그것을 기반으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에 지나지 않았다. 돈은 얼마나 버세요? 퇴근하면 무얼 하세요? 차는 있으세요? 집은 어디 사세요?라는 등의 질문들을 받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친구를 하는데 외모도 봐야 하고 스펙도 봐야 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옆에 남아있는 친구 딱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술로 승화해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사실 승화한다라는 단어는 나에게 너무나도 과분하다. 그냥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부족함은 없다. 술을 같이 마실 친구는 있지만 그 친구는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사실 만나기도 쉽지 않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운 나 같은 사람은 결국 도피처가 술이라는 것밖에 되질 않는다.


게다가 아빠가 죽고 나서 엄마 이름으로 되어있는 작디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일 정도이다. 술을 마시지 말라고, 내 집에서 술 마시지 말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마음 놓고 술을 마시질 못한다. 물론 어찌어찌 마시긴 하겠지만 그게 온전히 마음을 놓고 술을 즐기는 행위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 그래서 그런지 나는 술을 마시는 것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고 마지막 취미생활일 뿐이다. 운동을 할 수도 있고 다른 행위를 할 수 있지만 나에게 주어진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술을 마시면서 글을 쓰는 행위밖에 되질 않는다. 나는 글을 쓰는 행위로 어떻게든 이 백수 사태를 벗어나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글 쓰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아무나 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모두 돈을 쥐어준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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