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pty Mar 13. 2023

퇴사자 면담 조서

있을 때 잘하지 퇴사하니까 왜 이러세요

2월 27일부터 출근을 안 하고 있는데 갑자기 퇴사자 면담 조서라는 것을 작성해야 한다고 연락을 받았다. 연락하기 껄끄러운 마음이지만 그래도 퇴직금을 받아야 하니 면담 조서도 성실하게 잘 작성했다.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너무 신기했지만 나는 이런 거 작성하라고 누가 쥐어주면 누구보다도 솔직하고도 많은 양의 데이터를 쓰곤 한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적어주세요라는 문항에 정말 빼곡히 성실히 작성을 했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떠나고 나서의 그 회사를 위해서도 아니다.


최소한 나와 같이 일했던 팀원들이 조금이나마 나은 환경에서 근무를 했으면 좋겠는 마음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그렇게 구구절절 작성한다고 해서 그들의 처우나 대우가 눈에 띄게 변화한다거나 바뀐다거나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내가 작성하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래도 그냥 홀가분한 마음인 거겠지. 아무 말도 쓰지 않고 다 괜찮았습니다-라고만 이야기해도 나에게 문제 생기는 일은 없다. 이상하게 저런 것을 작성하라고 문서를 건네받으면 이상하리만큼 영웅심이란 것에 빠져서 이리저리 많은 것을 적곤 한다. 퇴직금을 받기 위해서지만 뭐, 1년 근무한 퇴직금이 얼마나 된다고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걸까 싶기도 하지만 단 백만 원이라도 어디냐며 감사하고 설걸 기는 걸 보면 그 돈도 참 나에게는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앞으로 뭘 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건데 이 나이 먹고 뭘 해야 할까.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기계처럼 글을 쥐어짠다고 해서 그게 과연 내가 하길 바라는 걸까. 이 나이가 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는 조금 더 공부를 하건 지식을 배우건 해서 기술 쪽으로 조금이나마 편하게 하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물론 현장에서 몸 쓰는 일이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 특성상 일을 계속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번아웃이라는 게 찾아오는 것 같다. 이번 선택이 인생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창업을 하건 뭘 하건 해야지!라고 자신만만했지만 결국 정말 퇴사를 하고 출근을 하지 않고 시간을 하루 이틀 허비하고 있다 보니 점점 발전적인 생각은 더 어려워지는 것만 같다. 난 뭘 해야 할까. 이 늙디 늙은 나이에 뭘 해야만 할까?


남들은 대기업에 가네 전문직을 오래 다녀서 인정을 받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삶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