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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Mar 26. 2023

술을 끊을 수가 없어요.

인생이 왜 이모양인가요?

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것은 숨길 수 없는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술을 마시면서 글을 쓰고 있고 쉬는 날이면 잠자기 전 꼭 술을 마시고 잔다. 그 정도로 술을 좋아한다. 술꾼도시여자들을 보고 괜히 원인 모를 위안을 얻기도 했다. 그 정도로 술을 좋아한다. 단순히 술을 좋아한다라는 것은 남들에게 알코올 중독 혹은 의존증으로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사실 신경 쓰고 싶지는 않다. 내가 술을 좋아한다는데 의존이니 중독이니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가도 결국 술을 좋아하고 술을 마셔서 생기는 병은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이고 그들에게는 사실 아무런 타격이 없다. 내가 술을 마시면서 글을 쓴다고 나한테 지적을 하거나 손가락질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실 누구보다도 술을 끊고 싶고 건강한 취미생활을 하고 싶다. 가장 간절히 바라고 싶은 사람은 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은 술을 끊을 수 있는 삶은 아닌 것 같다. 정말 수시로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는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술을 마시게 됐다. 물론 술을 마시는 이유야 다양하다. 슬퍼서 한 잔, 힘들어서 한 잔, 기뻐서 한 잔 등등 다양한 이유로 술을 마시지만 나에게 있어서 술을 끊을 수 없는 가장 큰 원인은 가족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우리 집은 풍비박산이 되어버렸다. 2년 정도 지났을까, 사실 나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어서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의 하루들과 돌아가시고 난 뒤의 하루들이 크게 차이가 없다. 아빠의 기일이 언제인지도 기억하지 않고 있고 억지로 지우려고 하고 있다. 물론 아빠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사랑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의 엄마도 아빠도 내가 원하는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단순히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아서 저 사람은 죽어도 마땅해-! 가 절대 아니다. 아빠는 살아생전 누나만 좋아했고 딸바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누나를 너무나도 좋아했고 아꼈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내가 보는 눈앞에서 보란 듯이 누나를 더 챙기거나 위하거나 하는 행동을 해서 나는 그게 정말 죽도록 싫었다. 오죽했으면 엄마도 그렇게 딸만 챙기면 아들은 뭐가 되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몇 번 하기도 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전 살던 집은 33평에 각자 방이 하나씩 있었고 엄마는 안방을 사용하고 아빠는 거실을 사용했다. 내 방문을 열면 누나 방이 바로 보일 정도로 가까웠는데 아빠가 누나한테만 과일을 씻어서 먹으라고 문까지 노크를 하면서 그렇게 애지중지했다. 자세히 어떤 일들이 더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가 누나를 너무 이뻐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그 여파가 고스란히 남은 가족들에게 돌아오는 것 같다. 아빠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다.


누나를 애지중지하고 너무나도 이쁘고 사랑스럽게 키웠던 아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니 누나는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누나는 해외에 있다 급하게 귀국을 하는 바람에 아빠의 살아생전 모습을 보질 못했다. 영상통화로만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봤다. 차디차게 식은 관 안에 있는 시체를 보는 것이 누나의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죽었고 살아갈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장례식장에서 정말 많이 들었다. 힘내라고, 기운 내라고. 그 이후 살던 집을 팔고 각자 가지고 있는 대출이나 빚을 갚고 아빠 앞으로 된 대출이나 빚을 전부 청산하고 나서 18평으로 이사를 왔다. 각자 방이 있었던 넓은 집과는 달리 세 명의 남은 가족이 살기에는 18평은 좁아도 너무 좁았다. 나는 방 없이 거실에서만 생활을 하고 각자의 방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애당초 이삿짐을 옮기면서 내가 방을 쓰기로 했지만 나는 이 집구석에서 같이 살 수 없다고 판단을 해서 곧 독립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내 방을 내어줬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독립의 쓰디쓴 맛을 보고 다시 본가로 들어왔다. 지금 내 상황이 애매해졌다. 독립한다고 나갔다 들어와서 방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내 방도 없고 아빠가 생활했던 그 방식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거실에서 누군가가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내 상황이 참 애매해진다. 내 방이 있어서 내가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거실에서 나는 보고 싶지도 않은 티브이를 같이 보면서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가족들은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순전히 내가 보고 싶은 걸 내 집에서 보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보지 말라는 둥 이야기를 하냐-라고 이야기를 한다. 정확히 이런 워딩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집에서 같이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게 불가능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인생이 처절하구나 싶다. 아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나는 내 방이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데 나를 위한 배려는 전혀 없다. 그리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공동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난 그런 부분이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당장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무언가 일을 꾸준히, 지속해서 삶의 목표를 정하고 차근차근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려워지면 알아서 하겠지, 무슨 일이라도 하겠지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안 한다. 내가 자존심이 센 건지, 세상을 너무 쉽게 바라보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바뀔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다양한 이유들로 술을 쉽게 끊을 수가 없다. 끊고 싶지 않다. 이것마저 할 수 없다면 나는 정말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나에게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집도, 돈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더 세밀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표현력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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