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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Apr 12. 2023

퇴직금으로 여행을 갈 줄 알았는데요.

말 그대로 퇴직금을 받은 뒤엔 꼭, 반드시 여행을 가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얼마가 들어오는지 알 수도 없었고 계산하는 방식도 몰랐기 때문에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와 여행이라도 다녀와야지-마음이 변함은 없었고 정말로 가게 될 줄 알았다. 3월 말만 하더라도 구체적인 도시와 계획을 차근차근 짰다. 그리고 하염없이 퇴직금만 기다렸다. 마치 한 달에 한번 받는 용돈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매일을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연락도 한번 먼저 준 적이 없다.


그렇게 된 이유로 여행 계획이 하나 둘 차질이 생기니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여행의 첫 번째 계획인 예약을 하지 못해서 마음이 점차 식어만 갔다. 해외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국내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게 어떻냐는 여자친구의 물음에 안돼! 나는 무조건 일본으로 여행을 갈 거야-라고 못을 박았고 여러 가지 후보지들이 있었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나 부산이나 제주도를 가봤자 어차피 같은 문화, 같은 것을 먹고 별 다를 것 없는 여행이 되는 것이 싫었다. 서울에서 보는 풍경이나 제주도에서 보는 풍경이나 같다고 생각했다. 가장 큰 오산이었다. 바다가 있고 없음의 차이가 그때 당시에는 몰랐다. 그냥 한국보단 일본이 나의 정서상 더 맞았고 특유의 차분한 그 분위기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결국 기다리던 퇴직금 정산이 끝나고 생각보다 퇴직금이 많군? 하면서 여행을 가볼까 했지만 이것이 나의 당장 마지막 생활비라고 생각을 하니 여행을 갈 생각과 마음이 차디차게 식어갔다. 생활비로 아껴서 살아보자라는 마음이 들었을 때 즈음 여자친구도 키우는 강아지와 집안 사정, 아르바이트 등으로 스케줄을 오래 뺄 수도 없었고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일본 도쿄라는 곳은 비행기표도 비싸지만 그보다 더 비싼 것이 숙소였기 때문에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렸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퇴직금을 받으면 어디론가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계획이 무산되니 당장의 의욕이 사라진 것 같다. 일을 알아보고는 있지만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고 30대가 되니 그 직업의 장래를 따져대기 시작했다. 이 일을 하게 되면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이 직업이 미래가 없는 일은 아닐까? 하면서 나 자신의 발목을 자꾸만 잡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


유튜브에서 본 감명받은 댓글이 있다. 자식들은 대학졸업을 하면 무조건 독립을 해야 한다는 말. 그리고 돈이 없고 돈이 많고를 따지지 않고 무슨 일이라도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무조건 독립을 해야만 한다는 댓글이었다. 물론 돈을 아끼려면 부모님의 집에서 얹혀사는 게 심적으로 편하지만 사실상 자식들이 20대 중후반을 지났는데 성격이나 성향이 맞지 않는다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지옥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지옥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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