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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May 20. 2023

서울 촌놈이 부산으로 내려갈 수 있을까?

평생 서울에서만 살고 지냈던 내가 부산이라는 곳에 매료된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서울 촌놈이 부산으로 내려가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태껏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었다. 굳이 인프라 좋은 서울을 두고 정 반대편에 있는 부산을 내려가는 이유는 사실상 없다. 다만 최근 부산을 다녀오면서 느꼈던 게 서울에서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도라서 더 매료된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여유로움이다. 평생 서울에서만 살아온 나는 항상 바쁘게 살고 치열하게 살고 경쟁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도태될 것 같다는 그 강박과 압박 속에 살아오다 보니 비교적 여유로워 보였던 부산이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물론 부산이라고 경쟁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서울이라고 무조건 경쟁만 하면서 치열하게 살 필요도 이유도 없다. 나만의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최근 다녀온 부산이라는 곳은 나에게 여유로움이라는 키워드를 주기에 충분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매력은 '바다'다. 워낙 치열하고 누군가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살아온 나는 숙면을 제대로 취하지도 못하고 수면의 질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잠을 잔다는 것 자체가 참 불행한 일이라서 나에게는 잠을 자는 것이 좋은 행위는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잠을 푹 자야 하루가 개운하고 눈이 맑아지고 몸을 회복하는 시간이라고들 말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잠을 자는 시간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심지어 자면서 꿈을 두 개, 세 개 연속해서 꾸는 습관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떤 것이 현실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잠을 자는 것보다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일을 하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한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숙소에서 술을 마시면서 바닷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쓰는 게 너무 행복했다. 그 시간만큼은 돈을 벌지 않아도, 먹지 않아도, 무언가 이룬 것이 없었더라도 참 행복했다.



이 숙소는 참 매력 있던 곳이었다. 방은 넓지 않았지만 매우 깔끔했고 창도 커서 바닷가를 보면서 글을 쓰거나 술을 마시거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하면 바로 옆 건물과 붙어있어서 잘못하면 사생활 노출이 될 것 같았다. 항상 무언가를 하기 전에는 커튼을 쳐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었던 곳이었다. 실제로 앞에 있는 건물의 방에서 여자들끼리 늦게까지 노는 걸 눈으로 계속해서 봐야만 했다.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닷가가 바로 보이는 숙소라는 것은 너무나도 훌륭했던 곳이었다.


이런 추억들이 하나 둘 쌓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부산이라는 곳에 흠뻑 취해버렸고 부산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정말 행복했다. 글을 쓰는 행위로 당장 생활이 가능할 정도는 절대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정말 행복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기차표가 매우 부담스럽긴 하지만 여행을 위해 돈을 벌고 돈을 소비하는 그 과정들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겐 제주살이보다 부산살이가 더 좋을 것 같다.


부산으로 내려갈 생각이지만 부산에서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까? 부산에 내려가면 이 나이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내려가지 말고 지금 모아둔 돈 조금씩 아끼면서 서울에서 직장을 잡아야 하나?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 개같이 고생하면서 200만 원도 못 버는 이 현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 예를 들면 숙소를 오며 가며 후기를 쓰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싶다. 여행 유튜버가 된다거나 그런 것과는 다른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방구석에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징징거리기만 하는 내가 참 혐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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