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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l 07. 2023

부산살기는 일주일로 끝이 났다.

그동안 부산 관련된 글을 쓰면서 헛된 희망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당연히 좋은 방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당연하게도 바다 근처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자신감이 아니라 이상하리만큼 확신이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산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라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서울에서 집을 알아보고 해당 방을 계약하기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KTX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는데 대전을 지나던 즈음이었을까 연락을 계속 주고받다가 해당 중개사한테 청천벽력의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전날 해당 매물이 있음을 확인했고 거래까지 가능한 것으로 확인을 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기차를 타고 모든 짐을 싸고 내려갔으리라.


"제가 다시 확인을 해봤는데 이 방 어제 계약이 완료된 방이네요. 아이구"


역시나 중개사를 믿어서는 안 됐었던 걸까. 나는 당장 그 중개사의 이야기만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 말이 혹시라도 거짓말은 아닐까 하는 의심은 했었지만 너무나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해당 방이 거래가 가능하고 공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리고 중개수수료도 무료인 조건이었으니 정말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렇게 방 거래가 안된다고 다른 방도 있지만 그 방은 5일 후나 입실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른 방을 부랴부랴 찾았지만 이미 많이 봐왔던 방들이 다시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당근마켓으로 집을 내놓은 세입자들에게 연락을 돌려봤다. 혹시라도 세입자들 중 중도퇴실 하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연락을 하다가 중도퇴실에 본인이 회사가 멀어져서 여자친구 집에서 살아야 해서 지금 살고 있는 방을 월세값만 받고 방을 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한 달만 살아도 좋고 그 이상 살아도 좋다고도 했고 보증금도 필요 없다고 했다. 나에게는 최고의 선택지였다. 그 방을 보고 계약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방도 내가 원하는 바닷가와는 거리가 좀 많이 있는 곳이었다. 걸어서 30분 정도는 가야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월세가 저렴해서 그 정도는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던 내가 참 바보 같았다. 그 집은 소위 원룸촌이었고 부산까지 내려와서 이런 방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조금 틔어있었으면 했고 소음 때문에 오피스텔을 선호했고 정말 바다 근처에서 살고 싶었다.


부산에 도착하고 다음 날 그 방을 실제로 보러 가기로 했다. 이 방을 보러 가기로 마음을 먹고 계약까지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모든 짐을 부랴부랴 싸고 그 집 앞에서 내려서 세입자와 같이 방을 둘러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세입자도 분명 좋은 사람이었고 집주인도 일절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한 번씩 여자친구가 내려오면 일주일가량 강아지랑 같이 내려올 건데 그것도 괜찮냐고 물어봤다. 분명 얼굴을 보기 전 연락할 때는 강아지가 한 번씩 찾아오는 건 괜찮을 거라고 했다.


막상 얼굴을 보고 설명하면서 강아지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꺼냈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를 했고 문자로까지 꼭 꼭 조심해 주세요라는 당부를 했다. 물론 지금 계약을 한 세입자도 강아지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강제로 퇴실을 당하니 그것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뭔가 우리가 키우는 강아지가 그런 취급받는다는 것이 큰 스트레스였다.


내가 직접적으로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가족이 된 것 같았다. 그런 가족을 귀찮은 존재, 걸리면 큰일나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월세를 언제 줄 수 있냐는 말에 일단 점심을 먹고 보내겠다고 했다. 그랬는데도 계속 몇 시에 월세를 보내줄 수 있겠냐고 묻는 것도 짜증이 났다. 어련히 들어가서 짐을 풀면 보낼까. 식사를 하고 오후 1시에는 입금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 과정에서 세입자에게 집주인처럼 갑질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감정이 울컥했다거나 짜증 나거나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집 근처에 있는 돈가스를 먹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이 집에 사는 것이 최선은 아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돈가스와 냉모밀을 시켜 먹고 있었지만 나는 정말 표정의 변화 없이 음식을 씹고 있었다. 계약하기로 했고 이미 집을 다 보고 양해를 구하고 짐까지 그 집에 보관해 둔 상황인데 밥이 제대로 들어갈 리 없었다. 여자친구는 나의 표정을 보고 그렇게 걱정되냐며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이 집에 사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고 세입자에게 연락을 해서 부랴부랴 들어오기 전에 밥을 황급히 먹고 짐을 찾았다.


이 더운 날씨에 그 많은 짐을 들고 어디서라도 방황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나서는 부산살이가 아니라 부산여행으로 목적을 바꾸고 일주일 정도만 지내다 다시 올라가기로 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서울 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그래서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 에어비앤비를 3박 4일 동안 있었다. 오피스텔에 환경이 좋다 보니 가격도 비쌌지만 그 집만큼 만족스러웠던 곳도 없었다.


내 취향은 언제나 한결같았고 깔끔하고 깨끗한 걸 좋아했다. 그리고 양심 있는 사람들과 남을 등쳐먹지 않는 사람을 원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집을 찾지도 못했고 그런 사람을 찾지도 못했다. 바다 근처에 어떤 매물이 있는지 이제는 알았으니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생긴다면 다음에는 꼭 그 집으로 계약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연고도 없는 부산이라는 곳에서 1년 계약을 덜컥해버리는 것이 겁나기도 한다. 사실 그것 때문에 계약을 계속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다. 신축 오피스텔을 단기로 받는 사람도 없겠지만.


아무튼 여러모로 정말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을 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을까. 아무튼 이제 다시 서울 쥐가 될 생각을 하니 다시 불안해졌다.


또다시 챗바퀴처럼 서울에서 쥐 죽은 듯이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고민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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