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생각을 해보면 기록하는 것을 즐겨했었던 것 같다. 중학생을 거쳐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는 그 과정까지의 타임라인이 미세하게나마 보이는 것 같다.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이름 순으로 자리를 배정받았던 경우가 많았었는데 늘 나는 앞자리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것도 가장 앞 줄의 왼쪽 첫 번째 자리 혹은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자리를 배정하는 방식이 꽤나 다양했다. 이름 순으로 자리를 배정한다거나 키가 낮은 순서대로 앞자리에 배정을 받는다던가 하는 방식이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짝이 된다는 것이 그때는 죽을 만큼 어색했고 심지어 내가 다닌 학교는 남자들만 가득한 남중, 남고였어서 어색함이 배가됐다. 남녀공학이었다면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다 내 책상을 침범하는 순간 짜증을 낸다거나 가림판을 세운다거나 했었겠지만 남자들만 득실 한 곳은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짜증을 냈으면 냈지. 그런데 대개 나와 짝을 한 친구들은 순한 친구들이었다. 중학생 때 맨 앞쪽에 자리를 잡았을 때 옆에 앉았던 짝은 너드 같은, 덕후 같은 기질을 가진 친구였다.
그 친구는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했고 안경을 썼고 반에서 가장 키가 작았다. 참 착했고 욕이나 상스러운 장난을 칠 줄 모르는 친구였다. 수업시간에 논다거나 잔다거나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내가 옆에서 잠을 더 많이 잤었던 것 같다. 쉬는 시간이 되면 챙겨 온 하얀 무지 노트에 그림을 그리고 나한테 보여주기를 반복했다. 생각해보면 그 친구가 참 좋았던 것 같다. 때가 타지 않은 순수함의 결정체라고 해야 할까.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유일하게 그 친구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 딱 한 가지가 있다. 쉬는 시간이면 나는 노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무수히 적어내려 갔다. 소방관, 경찰, 형사, 엔지니어, 수리공 등등 끊임없이 적어 내려 갔고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공부보단 기술을 배워야겠다 하는 생각에 아는 기술직의 직업은 모두 적었던 것 같다. 그 노트에 빼곡히 적고 친구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직업은 이래서 안 될 것 같고 이건 좋을 것 같다는 친구의 의견에 같이 머리를 싸매고 이야기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 노트에 적은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 진로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표출된 행위라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잘하는 것이 없었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애정결핍을 가진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날 좀 봐주세요." 하며 행동을 하고 일부러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한다고 하는데 나 역시도 그랬었던 것 같다. 잘하는 것 하나 없이, 특출 난 기술 없이, 재능 없이 허송세월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던 것 같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첫 1년은 무탈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첫 1년은 탈 없이 평범하게 지나갔지만 2학년이 되기 전 전공을 선택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설문지에는 문과, 이과, 예체능이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예체능은 미술, 음악, 체육으로 나뉘었는데 내가 그때 그 선택을 하면 안 됐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나는 그나마 그때 좋아하던 것이 노래 부르는 것이었으니 당연히 음악을 하겠다!라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적어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결과는 내 인생을 모조리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문과를 가서 인문학 공부를 하고 글을 공부했더라면 내 삶은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선택이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로 인한 결과는 모두 나의 몫이니.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예체능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는 수업을 꽤나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예체능이라는 특성상,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보통 없다. 우리 반에서는 나를 포함한 3-4명만 수업시간에 깨어서 수업을 듣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엎드려서 잤다.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도 포기하고 수업을 듣는 친구들에게만 시험 범위를 더 많이 알려준다거나 예상 문제를 알려준다거나 했었다. 나도 적잖이 공부를 하곤 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기록하는 행위를 좋아했었던 것 같다. 늘 책의 빈 공간에는 필기를 하며 오밀조밀 적었던 것으로 보아 그때 눈치를 챘었어야 했다. 아, 나는 텍스트를 좋아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이고 그때부터 재능을 키웠어야만 했었던 것 같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중학생 때부터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으니 15년 가까운 시간을 방황하고 허송세월을 보냈지만 이제서라도 글 쓰는 행위에서 안정을 찾고 해소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너무 늦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글을 쓰는 것이 좋다. 목표와 꿈은 물론 작가가 되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람은 싫다. 소소하게 마주친 사람들의 힘듦과 어려움을 들어주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글자라는 선물과 편지라는 포장지를 선물해주고 싶다. 작가가 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글 쓰는 것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글이 어질고 정리되지 않고 보기 좋은 글은 아니지만 내가 힘들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을 만났더라면 매일 그 사람의 글을 찾아보고 나와 얼추 결이 비슷한 사람도 있고 이런 아픔도 있었구나 하면서 공감하며 하루를 버틸 힘이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