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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Aug 20. 2023

자취를 시작했는데 책상이 없어서 책상을 주워왔다.

나는 자취를 시작했다. 집에서 1시간 30분이나 떨어진 곳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부모님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받은 도움이라곤 반찬 세 가지와 비가 너무 많이 온다며 꾸깃꾸깃 챙겨주시던 오만 원짜리 두 장. 그게 전부였다.


사실 부모님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은 많다. 항상 자취를 할 때 집을 가면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을 쪼개서라도 반찬을 준비해 주셨고 그때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라며 현금을 주셨다. 물론 매번 주셨던 것은 아니지만 여유가 있을 때마다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빈티지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사실 돈이 없는 생활이나 무엇이 됐든 '없는 생활'은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이 백화점, 브랜드 옷가게에서 옷을 살 때 나는 동묘로 가서 구제 옷을 사 입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집에서 20분만 가면 되는 거리에 있었고 옷을 무덤처럼 쌓아둔 곳에서는 옷을 천 원, 이천 원씩밖에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잘만 고르면 모직 코트도 고를 수 있었고 바지나 셔츠 등 다양한 옷을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매일 간다고 득템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교통비 손해는 각오하고 갔어야 했다. 거기서 옷을 사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서 제값을 주고 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빈티지한 생활의 표본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것은 30대가 지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빈티지하다고 해서 컵라면을 이틀에 나누어서 먹는다거나 일부러 수돗물로 배를 채운다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왜냐하면 술도 같이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세 번의 자취를 끝내고 네 번째 자취를 시작했는데 이 동네는 신기하게 쓸만한 물건을 잘 버리는 것 같다. 오늘은 노브랜드를 가서 마실 물을 사려고 가는 길이었는데 내 레이더망에 걸린 아이템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주 크고 묵직하게 생긴 업무용 테이블이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어? 이건 가져가야겠는데? 하고 생각을 했고 그 이후에는 바로 테이블의 상태를 봤다. 이미 폐기물 신청을 완료한 상태라고 스티커도 붙여져 있었고 네 개의 다리 중 받침대가 빠진 곳이 하나도 없었고 흠집 나 까진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보다 무거운 무게에 이 브랜드가 뭔지 궁금해서 확인을 해보니 심지어 리바트 제품이었다.


가지고 가지 않을 이유가 결코 없었다.


이건 꼭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가져갔다. 무게는 매우 무거웠지만 노브랜드에서도 마실 물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보니 작고 귀여운 카트를 끌고 가던 중에 마주친 테이블이라서 겨우겨우 무게중심을 이용해 옮겼다. 오피스텔 출입문을 하나만 열어놓는 바람에 꽤나 고생을 했지만 그리고 방문을 아슬아슬 통과하는 수준의 크기와 무게였어서 정말 힘들었지만 집 안에 들이고 나니 생각보다 넓고 식사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업무용 책상으로 사용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올해 주워온 물건 중 가장 좋은 퀄리티를 가진 책상이었다. 마땅한 책상도 의자도 없어서 맨바닥에서 생활하다시피 했던 생활을 조금이나마 빠르게 단축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뻤다.


빈티지한 생활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다음엔 어떤 물건을 줏어오게 될까 궁금해질 정도다. 돈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버티는 걸 보면 참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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