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나는 그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말로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도 그렇고 주관적으로 제 3자가 나를 바라봐도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회피하고 다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고 무서워했다. 내가 저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를 걱정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새로운 사람과 엮이기 시작하면 분명 나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친구가 없다. 마음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대화를 나눌 사람조차 없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안타깝게도 친구가 없다.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꾸미는 게 이쁠 나이였고 피부톤을 정리한다던가 눈썹, 구레나룻을 정리하고 손톱, 발톱 등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만의 루틴이 있던 사람이었다. 심지어는 피부에 비해 입술색이 없어 죽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을 아주 어렸을 때 듣고서는 틴트나 립스틱, 그리고 립밤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준비성이 대단히도 철저했던 사람이었다.
어딜 가더라도 항상 꾸민 상태를 유지했어야만 했고 셔츠, 셋업, 구두 등을 잘 챙겨 입고 다녔고 패션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항상 대비를 하면서 살아왔었다. 그때가 내 예민했을 때의 긍정적인 측면이었던 걸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사업 아닌 사업을 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결국 '요식업'이기 때문에 한 여름에는 쪄 죽을 정도로 덥고 추울 때는 한기가 서릴 정도로 추운 중간이 없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대한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어야만 했고 구두는 사치, 신발은커녕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몇 개월 동안 그렇게 지내다 보니 옷은 항상 입는 옷만 입어댔고 활동복으로 불리는 육군 티셔츠나 후리스를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성격이 더 더러워진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 자신이 너무 볼품없고 잘 살고 있는 느낌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더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진 것은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도 아닌 것이 나는 혼자 있을 때 방 청소도 잘하고 먼지구덩이에서 코를 훌쩍이긴 하지만 설거지와 빨래, 이불 정리, 강아지 털 정리, 수납장 등등 정리할 때 나는 가장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도 그렇게 깨끗하고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눈에 보일 정도로 더럽다면 한 번씩 청소를 해야만 한다. 옷 가지들을 턱턱 올려대는 그런 모습은 정말 용납할 수가 없다. 나는 어려서부터 사립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늘 학교에서 돌아오면 옷부터 갈아입는 습관이 있었다. 땀을 많이 흘린 날에는 항상 빨래통에 옷을 벗어두고 매일 샤워를 해댔고 가을부터는 매일 샤워는 어렵더라도 옷은 항상 빨래통에 넣어두었고 옷은 항상 그때그때 벗어서 집 들어오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렇다고 침대에다가 던져놓고 그 위에서 옷가지들과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옷걸이를 이용해서 옷장에 항상 넣어두고 옷장 문까지 꼭 닫고 나온다.
모르겠다. 그게 강박이라면 강박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내가 사용한 모든 것들은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인데 이게 뭐 어려운지 모르겠다. 물론 바로바로 치우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히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치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마음이나 성격이 맞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사는지, 돈이 없어도 여유가 없어도 서로를 의지하고 믿고 서로를 배려하는 그 말투와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대화가 얼마나 성숙하고 어른스러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가슴이 답답하고 콱 죽어버리거나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간만인 것 같다. 물론 나는 쫄보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해칠 마음도 생각도 계획도 전혀 없다. 그저 충동적인 감정들만 들뿐이다.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면 안 되겠지. 하지만 마음이 쉴 시간 없이 항상 분노한 상태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