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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Nov 03. 2023

나는 아마도 가장노릇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내 생활은 나도 모르게 아빠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물론 이 생각을 그때부터 한 것은 아니었고 최근에서야 느꼈다. 나는 생각보다 치밀하고 생각이 많고 복잡한 사람이라 어디서부터 생각이 났는지 적어보려고 한다.


정확히 이런 생각을 했을 때는 내가 돈에 욕심이 없고 건물, 아파트, 자동차 등에 관심이 일절 없는데에서부터 시작했다. 정신과를 다니면서도 내가 궁극적으로 궁금했던 것은 왜 나는 이런 물질적인 것들에 관심이 없는 걸까?라는 물음표에서부터 시작했다.


지금은 사라진 청량리 정신병원에서 검사를 두어 번 받으면서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왜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고 무기력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검사를 했고 그 이후에 방문을 하고 결과를 들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돈을 열심히 벌어서 아파트를 사거나 자동차를 사고 여행을 가거나 하는 것에 대해 의욕이 없는 걸로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의욕 없는 사람'이라고 자랑처럼 떠들어댔다. 나는 의욕이 없고 무기력합니다-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그나저나 왜 의욕이 없고 왜 그런 것에 관심이 없냐고 물었더니 그건 그냥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에 관심이 없는 것뿐이고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그 이후로 한결같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5-70만 원만 벌어도 만족하는 삶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달마다 대출 이자가 나갈 일도 없었고 돈이 나갈 일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돈을 벌면서 결국 내 인생 처음으로 천만 원이라는 돈을 모았다. 나에게 있어 돈 쓸 일이라고는 혼자 살 때 월세, 관리비, 생활비, 교통비, 통신비 정도였다. 어차피 생활비라고 하지만 밖에서 점심 먹을 돈과 퇴근해서 집에서 간단히 먹을 밥과 술 정도면 해결이 될 정도였으니 그렇게 무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는 혼자 살 때 180만 원도 못 받았을 때 월세나 내야 할 것들을 다 내더라도 100만 원을 저축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않았고 먹을 돈을 아껴서 돈을 아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최근 들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사고 싶은 물건을 사려고 해도 썩 흥미가 생기질 않았는데 여자친구가 먹을 음식이나 약, 옷 같은 건 턱턱 사주는 걸 보면서 느꼈다. 나는 나한테 돈을 쓰는 것도 싫어하지만 이게 어찌 보면 가장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했다. 자기 자신은 먹을 것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돈을 아껴가면서 주변 사람이 원하는 건 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랄까.


뭐 그렇다고 해서 차를 한 대 뽑아줬다거나 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내 수준에서 베풀 수 있는 것은 최대한으로 베풀고 있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있었지만 흥미나 의욕이 없었기 때문에 그게 오롯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하루 한 끼만 먹고 그게 라면이라도 좋고 잠들기 전 소주 두어 병이면 내 삶은 끝이다. 그렇게만 살아와서 오히려 돈을 많이 쓰고 사치 부리는 게 어색할 정도이다. 나도 좋아하는 회를 먹고 싶고 육회를 먹고 싶지만 그것을 먹어봤자 결국 배가 부르면 기분이 나빠질 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렇게 술안주로 곁들여 먹는다고 하더라도 술은 똑같이 취할 것이기에 굳이 욕심내려고 하지 않는다.


당장 필요한 것을 꼽자면 유일하게 머리를 말리던 헤어드라이어가 망가져서 하나 새로 구입을 해야 하고 다이소에서 사 온 5천 원짜리 키보드 키감이 너무 좋지 않아서 손목에 무리가 가서 제대로 된 무선 키보드를 하나 사고 싶다. 그리고 밀크씨슬 약을 다 먹어서 3-6개월치를 다시 사야만 한다. 생각나는 것은 이것뿐이지만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그리고 돈을 더 모은다고 한들 내 삶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까라는 의문뿐.


내가 지금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걸까. 이렇게 사는 게 익숙해져서 이런 처절한 거지 같은 삶이 익숙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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