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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Nov 04. 2023

글을 쓰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다녔던 정신과에서는 어떤 의사 선생님도 글을 쓰는 행위가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글로 풀어낸다면 오히려 더 좋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선생님에게 내가 겪은 감정들이나 생각들을 글로 쓰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고 혼자 일기장에 쓰는 걸로 오해를 하실 것만 같아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있고 구독자도 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술을 마시고 새벽에 쓰는 글에 더 몰입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더 우울해질 수 있어서 글을 쓰는 게, 일기를 쓰는 게 좋지만은 않다고 했다. 오히려 더 몰입이 되어서 더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마친 후에 그렇게라도 해소하지 않으면 머리가 정말 터져버릴 것 같아서 글을 쓴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환자가 너무 급박해 보였을까 아니면 절박해 보였을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정말 목숨이 위태로운 행동을 할 것 같아서였을까. 어느 쪽이 됐건 짐작은 쉽게 하지 못하겠다. 환자가 의사를 어떻게 짐작하겠는가. 별 수 없는 일일 뿐이지.


나는 글을 쓰는 행위가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많이 되고 있는 줄만 알았고 이 글들을 모두 모아서 나중에는 책으로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2023년 목표로 1,000개의 글을 쓰는 것을 올해 초에 목표로 세웠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일상이 누구보다도 특이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인데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고 정상적인 하루 일과를 마치는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일은 왜 나한테만 일어나는 거야?'라고 나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긍정의 특별함이 아닌 부정의 특별함이었다. 내가 이런 불행한 사람이니까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을 했던 것뿐이겠지.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사실 정말 나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재수 없는 일들이었을 수도 있고 나만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모르겠다. 내가 지금 어떤 문제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지, 약은 일주일 간격으로 받아오고 있지만 약을 먹는 날보다 먹지 않는 날이 더 많아서 약은 약대로 쌓여만 간다. 일주일에 몇 번이나 먹는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로 먹지 않을 것이라면 나는 정신과를 왜 다니는 걸까. 그저 사람과의 따듯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대화가 필요한 걸까? 심지어 의사 선생님에게 무슨 목적으로 치료를 받고 약을 먹는지 모르겠다고까지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의 말씀은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회복을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약에 의존해서 약이 없으면 사회생활을,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면 약을 먹는 것이 낫겠지만 지금의 나는 약이 필요한 건지 뭐가 필요한 건지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병원을 다니면서도 돈은 계속 쓰고 약은 계속 받아오지만 쌓여가는 약처럼 내 마음의 응어리들도 쌓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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