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전기 중단 사태

원룸의 전기가 중단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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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일도 많고 이야기도 하고 놀다 보니 새벽 한 시 반 정도에 심야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택시는 11시 40분부터 잡히지 않기 시작했고 새벽 1시가 지나면 보통 택시가 하나 둘 잡히기 마련인데 1시 30분이 되는 시간에도 택시는 잡힐 기색이 없었다. 마치 '암만 일반택시 불러봐라, 나는 블랙만 잡을꺼지롱'하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듯한 느낌을 적잖이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삼동 큰 길거리에 나와서 택시를 잡으려고 보니 절대적인 갑은 택시와 택시기사였다. '빈차'라는 붉은색 글씨를 보고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손을 뻗어보지만 차선 한 개는 족히 넘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조수석 창문만 반쯤 내린 채로 클락션을 뿌아앙-울리고 나를 힐끗 쳐다보고 간다. 아마도 택시기사가 가는 방향 혹은 퇴근하는 방향 내 있다면 가는 길에 픽업할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강남구에서 심야에 택시를 잡아본 횟수가 꽤나 있는데 그때마다 택시기사들의 갑질에 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뭐, 수요가 많은 강남구 심야시간대에 더 멀리 가려는 손님을 태우려는 것은 갑질이 아니라 당연한 물질적인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심야시간에 일반 택시가 잡히지 않고 블랙 택시를 잡으니 15초도 안되어서 바로 배정이 되었다. 그걸 보고 정말 기가 찼다. 강남구에서 관악구로 가는 그 멀지도 않은 거리를 7-8만 원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 끽해봤자 25분~30분이면 가는 거리를. 그럴 거면 차라리 스쿠터를 타고 가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아무튼, 택시를 포기하고 심야버스를 기다리고 탔는데 27개의 정거장, 39분의 소요시간을 버텨내야만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정말 다행히도 강남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앉아서 갈 수 있었다. 강남역을 지나 교대, 남부터미널로 빠지는 그 루트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심야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는 딱 중간 자리에서 메고 온 백팩을 앞으로 감싸 안아 창밖을 구경하면서 졸면서 사람들도 구경하면서 이래저래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타고 가는 중에 멋을 굉장하게 내고 온 여자분이 버스 뒷문 기둥에 온 몸을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기대 있다가도 흔들리는 버스에 몸이 휘청거릴 때면 앉을자리가 없나 뒷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스캔하고 이내 앉을자리가 없네.. 하는 듯한 모습이 좀 안타까워 보였다. 술에 많이 취한 듯 자리를 양보하고 싶었지만 나 역시도 택시 대란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였고 내가 앉은자리가 안쪽 자리여서 선뜻 일어나서 비키면 다른 사람이 앉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일어나지는 못하고 계속해서 걱정스러운 마음만 안고 있었다. 오지랖도 넓지.


결국 내 앞에 앉아있는 남자가 일어나자마자 그 자리에 앉아 창문에 기대어 잠을 자는 듯했다. 뭐, 그런 모습을 보니 술이 정말 이로운 건 아니겠거니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제 나도 저렇게 새벽까지 놀고 심야버스를 타고 집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물론, 나도 저런 화려하고 이쁜 옷을 입고 싶다고 생각도 했다. 그 사람은 여자라서 해당사항은 없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내릴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갔다. 괜히 사람들이랑 바글바글하게 내리고 싶지는 않아서 여유롭게 내려서 걸어갔는데 생각보다 새벽 공기가 꽤 마음에 들었고 상쾌했다. 그렇게 한 15분을 천천히 걷고 집에 무거운 두 다리를 이끌고 겨우 도착했다. 아마 그 시간이 두 시 사십 분이 넘은 시간이었으리라. 그런데 이상리만치 집이 차가웠고 조용했다.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문을 닫고 불을 켜려는데 불이 켜지지 않았다. 버튼을 잘못 눌렀나? 생각했다. 버튼이 총 세 개 있는데 맨 아래칸은 아무 작동을 하지 않아서 그 버튼을 누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불을 모조리 다 켜봐도 켜지질 않았다. 핸드폰 플래시로 좁디좁은 집 안을 비추니 난방 기기에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이건 전기가 끊긴 거구나 생각했다.


왜냐면 며칠 전, 집으로 날아온 공과금 통지서에는 4월 30일까지 요금을 내지 않으면 전기를 중단하겠다!라는 독촉장? 경고문?을 받았었다. 그런데 아직 30일이 되기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없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문제였다. 다시 한번 통지서를 확인하니 그전까지 내지 않으면 전기가 끊길 예정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알게 모르게 지나쳤던 것 같다. 심지어 배터리도 53%밖에 없었는데 전기가 안 들어오면 tv, 냉장고, 전기장판, 핸드폰 충전,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 말릴 헤어드라이어의 부재까지 모든 것이 중단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실제로 새벽이 깊어진 이유로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집 안에 있는 비상구 초록색 불빛도 꺼져있었으니까. 너무 무서웠다.


그래도 어디 나가서 잘 수 없으니까 그냥 옷도 안 벗고, 손도 안 씻고, 양치도 못하고 잠을 잤다. 도무지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꽤나 무서웠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번화가의 정 반대편이라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시끄러운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희미하게 들린 소리라고는 옆집 사는 사람의 유튜브를 보는 소리? 정도가 희미하게 들렸던 것 같다.


뭐, 헤어드라이어가 없다고 해도 수건으로 말리면 되는 일이고 tv가 켜지지 않더라도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새우잠을 자면 되는 일이고 전기장판이 꺼져있으면 옷이라도 하나 더 입고 자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배터리가 53%밖에 없었다는 것이 나를 가장 불안하게 했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아이폰 8을 3년 가까이 쓴 것 같다. 보통 배터리 충전 사이클이 500회 이상이면 교체를 받아야 한다고 나와있는데 나의 아이폰을 확인해보니 1260회였다. 정말 최근에 받은 충격 중 가장 컸던 것 같다. 2번을 교체해도 모자랄 판에 어찌어찌 사용하고 있었다니.


그래서 최대한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알람만 맞추어두고 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46%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음악만 듣고 출근을 했다. 머리는 수건으로만 말려서 사방으로 뻗쳐있었고 세수를 극 냉수로 해서 그런지 잠 깨는 데는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지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내가 사는 집이 전기가 끊겼다는 사실이 꽤나 무섭고 웃겨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이제는 전기가 끊기지 않게 돈을 잘 내야겠다.


공과서를 보니 2,3월 미납이 있었다. 두 달 안 냈다고 전기를 끊어버리다니. 너무해.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참 웃기긴 하다. 뭐 십 만원씩 밀린 것도 아니고 4,700원가량의 미납분 두 번과 6,200원가량의 4월 전기요금. 그걸 안 내고 있었다니. 참 웃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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