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앰뷸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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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가다 앰뷸런스를 봤다. 나에게 앰뷸런스란 참 고독하고 견디기 힘들었던 시기를 표출하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이다. 나의 인생에서 앰뷸런스는 딱 두 번 있었다. 나 자신의 한 번과 타인의 한 번.


먼저 내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나는 작년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너무 힘들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나 자신을 해쳤었다. 어떠한 이유로 나는 응급실에 실려갔다. 앰뷸런스를 내가 부르진 않았지만 가족 중 한 명이 불러주었고 엄마와 누나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고 엄마는 나에게 울면서 너까지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하는 거냐며 누워서 기절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울며 소리 지르면서 울부짖었다. 엄마는 아빠를 잃은 상태에서 유일한 장남인 나를 잃는 것이 무서웠겠지 싶었다. 물론 그때 당시에는 나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만 같았다. 내가 아빠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고 믿을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응급실에 가서 링거를 맞으려고 누웠는데 영화에서만 보던 응급실 천장에 달린 전등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앰뷸런스에 몸을 눕히기 전, 나는 고통스러운 새벽을 지나 오후 늦게까지 혼자 끙끙 버티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앰뷸런스를 불러달라고 했고 구조대원이 와서 나에게 무엇을 먹었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했다. 나는 온 가족과 구조대원이 보고 있는 상태에서 말을 하지 못했고 엄마의 등쌀에 밀려 수면제 처방받은 것을 모두 다 털어 넣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소리 없이 또 눈물을 흘렸고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이야기를 했고 이내 응급실로 향하는 앰뷸런스에 몸을 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그날은 비가 왔다.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렇게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나는 운이 없었던 것인지 간호사가 내 팔의 핏줄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한동안 고통을 느끼고 이내 수 분이 지나자 괜찮아졌다. 물론 링거의 효과는 아니겠지만 그냥저냥 마음이 편해졌다. 옆에 손을 잡아주는 엄마도 있었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창궐하던 그 시기에는 응급실에 앉아있을 수 있는 의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환자만 누워있을 수 있었고 보호자는 몇 시간이건 서서 환자를 기다려야만 했다. 약 기운에 헤롱거렸던 나는 엄마에게 나가서 앉아있다가 오라고 했다. 무언가 신경이 계속 쓰였던 탓인지 순간적으로 잠에 들거나 깼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내 옆을 지켜줬다. 엄마는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서 어떤 사람보다도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마냥 건강할 줄 알았던 엄마는 생각보다 아픈 곳이 많았고 나이가 점점 든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프지 않은 곳보다 아픈 곳이 더 많아지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는 나를 가장 가까이서 지키겠다고 의자가 있는 대기실에 가지도 않고 다섯 시간 이상을 서있었다. 아마 나는 대여섯 시간을 링거를 맞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더 이상 엄마가 서있는 것을 못보겠어서 그만 맞겠다고 하고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그 이후 엄마는 나를 극도로 신경 쓰며 살아갔고 나는 그때 엄마의 그런 태도가 당연하다고 느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태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부모로 태어나서 자식을 케어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또 그런 행위를 할까 봐 겁나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군대로 치자면 관심사병을 노심초사 지켜보는 중대장의 느낌이었을까.


그렇게 해서 나는 앰뷸런스를 생전 처음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탔고 그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나 자신의 여파도 그렇고 가족들에게 안긴 상처도 적잖이 컸을 것이다.


다른 앰뷸런스의 글은 아빠랑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는 것인데 과연 글을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글을 적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노골적으로 글을 쓰는 타입이다 보니, 어찌 보면 아빠의 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오늘은 이렇게 글을 썼다는 것에 만족을 하며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그리고 빨리 내가 사는 집의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데스크톱도 팔고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로 사서 가지고 다니면서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머리에 쓰고 싶은 글 주제는 많지만 쓸 수 없는 것이 작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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