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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Dec 31. 2023

오늘은 마지막, 내일은 새로운 시작

벌써 23년 마지막 날이 되어버렸다. 내가 누차 입에 달고 살아온 말이었던 "30살엔 죽어야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벌써 2년이나 더 살아버렸다. 물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죽음이 삶보다 훨씬 더 무섭고 행하지 못할 일이구나라는 것을 받아들인 뒤로 늙는다는 것,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도 남들처럼 늙으면 초라해지고 비루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실제로 오랜 시간 4호선을 타고 가끔 1호선도 탔던지라 그런 어른들을 많이 보고 자랐던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노인들을 많이 마주치다 보니 게다가 내가 점점 늙어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그 두 가지의 생각이 하나로 합쳐져서 늙어간다는 것이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두렵다. 무섭고.


그런 이유로 꽤 살아가고 있다. 나름 일을 하면서도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이따금씩 좋아하는 것을 산다거나 다른 관심거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행동하는 내 모습을 보면 나도 참 많이 바뀌긴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23년은 사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20대 때의 삶의 속도와 지금의 속도는 너무 다른 것 같다. 지금이 너무나도 속도가 빠르고 뭘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벌써 내일이라면 2024년이고 나는 어느덧 30대 초반을 지나서 중반이라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고 몸뚱이가 하나 둘 고장 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제대로 체력관리나 건강관리를 하지 않았기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병원을 가서 치료를 해야 하지만 당장 나갈 수 있는 돈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병원 가는 것을 미루고 있다. 심지어는 국가 건강검진도 받아야 하는데 전날 10시 이후로 금식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쉽지 않았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 23년에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을 25년으로 미루어야 하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그전에 내 돈을 주고서라도 건강검진과 피검사를 받아봐야 하겠지만 그냥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서 조금은 아쉽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1월 1일 새벽에는 일본을 가게 됐다. 왜 가는지는 모르겠다. 단순히 아주 작게나마 여유가 생겨서 지금이라도 어디든 다녀오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 무지성으로 돈을 모은다고 이 돈을 엄청나게 불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하루살이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것을 마시고 좋아하는 것을 보는 것. 뒤가 없는 삶을 어느샌가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동안 수많은 회사생활을 해왔고 돈을 모아 왔었다. 하지만 얼마를 모았어도 나는 만족할 수 없었고 만족이란 것을 몰랐다. 그 정도면 돈을 꽤 많이 모았군-! 밖에 되지 않았다. 몇 개월 전 천만 원이라는 돈을 모았을 때도 엄청나게 기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결국 이 돈은 어디론가 지출이 될 것이었고 온전히 그 돈을 투자 명목으로 굴릴 수 없었기에 그냥 내 인생에서 8자리 숫자의 돈을 모아 보기도 하는구나 하고 그때 당시에는 정말 나 자신이 멋있었고 대견스러웠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보증금 300만 원이 없어서 엄마한테 돈을 빌렸던 적도 있었기에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능력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나 자신을 더욱더 채찍질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고 월급이 200만 원도 되지 않은데도 월세로 7-80만 원을 지출하고 생활비나 식비, 교통비, 핸드폰 요금 등을 쓰고 나면 나는 왜 일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돈을 왜 모을 수가 없는 거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돈을 내고 나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매우 한정적이었고 외식은커녕 데이트 비용이나 쇼핑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특히나 여자 옷보다 남자 옷이 훨씬 더 비싸기 때문에.


그렇다고 지금 상황도 이전과 다를 것은 없다. 가장 큰 차이점은 대출이나 빚이 없어서 0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점 하나뿐이다. 돈을 모아서 행복을 바라는 성격도 아니고 집을 가지고 싶다거나 차를 가지고 싶다는 목표가 절대로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의 뿌듯함을 배운 것 같다. 욕구가 남들보다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 작은 것에도 뿌듯해하고 행복해한다. 남들처럼 바쁘고 살아있는 느낌을 사는 사람은 아니기에 껍데기만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겨우 사는 것도 꽤 재밌고 흥미롭다. 물론 돈이 더 많으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더 행복해질 수 있겠지만 지금도 썩 나쁘지 않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적당한 삶, 적당한 일, 적당한 휴식. 좋다. 남들과의 격차는 더 벌려지겠지만 내가 좁힌다고 좁힐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포기하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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