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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an 13. 2024

촬영장에서 만난 90세 대 배우

일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일적으로 만난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떤 포지션인지는 궁금하지 않다. 그저 나에게 잘해주면 좋은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저 고객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번 행사는 경기도에서 전라북도 부안까지 내려가는 대장정이었다. 사실 첫 일정은 12월 중순이었지만 촬영이 진행되는 날짜에 폭설 경보가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일정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부안까지 3시간이 걸리는데 폭설이 내린다면 서로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어서 차라리 미루어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2024년이 시작되었고 일정 조율을 다시 진행했다. 폭설 예보도 없고 비 예보도 없는 화창한 날을 선택해 주셨다. 사실 부안을 도착하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요청들이 있었고 연락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심지어는 담당자님께서 굉장히 배려를 많이 해주시는 스타일이었어서 오히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부분들이 좋았을 정도이다.


그렇게 전라북도 부안을 도착하게 되었다.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던 촬영팀은 촬영에 필요한 아이템을 섭외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낙점되었다. 물론 우리만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다른 것들도 있었을 텐데 우리를 선택해 준 이유는 아마도 빠른 응대와 해달라는 것을 잘해주려고 했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다른 곳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가격적인 측면도 나쁘지 않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촬영 현장에 도착을 했고 촬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우리는 그저 대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모든 인력들이 촬영 전 세팅과 촬영이 끝나면 다음 촬영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아는 것도 없었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강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이리저리 촬영장 주변을 둘러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첫날 10시간가량 외부에서 찬바람을 쐬고 있었더니 온몸이 삐그덕 대는 기분이었다. 촬영 현장을 처음 가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스케일이 클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충격을 받았던 부분도 상당했다.


그리고 두 번째 날은 점심을 먹고 촬영 현장을 왔는데 어디서 본 듯한 배우분들이 많이 계셨다.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오전 촬영이 끝난 시간이라 많은 구경을 할 수는 없었지만 연세가 있는 배우분들의 얼굴을 봤고 내적으로 혼자 '만나서 반갑습니다! 굉장히 멋지세요!'라는 말을 되뇌고 있었다.


그렇게 오후 촬영이 시작하려고 하던 찰나, 이제 오전 촬영으로 모든 배우분들이 빠진 줄 알았다. 하지만 연예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배우이신 이순재 배우님이 현장을 지키고 계셨다. 촬영이 아직 한참 남았던지 추운 날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내 이미지의 이순재 배우님은 그렇게 큰 기억이 없다. 하지만 연로배우 중 가장 연기를 진심으로 하는구나라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다. 영화나 티브이 등 많은 곳에서 얼굴을 비추어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몰랐는데 2024년 기준으로 올해 연세가 90세라고 하셨다. 실제로 현장에서 뵈었을 때는 90세라기보다는 70대 정도로 관리를 아주 잘하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90세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관리를 잘 해오셨고 무척이나 깔끔하고 멀끔하셨다. (나무위키로 찾아보니 건강을 위해 술, 담배를 안 하신다고 한다.)


촬영 현장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고 기쁨과 신기함의 비명을 지를 수 없었고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어야 했다. 선생님은 매우 추운 날씨에도 대본을 술술 읽어나가셨고 촬영을 무사히 마치셨다. 옆에서 보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저런 느낌일까?라는 생각조차 하게 만들었다. 추운 날 촬영을 모두 마치고 나가시는 길목에서 마주쳤는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니 아무런 말 없이 양손을 들어서 표현을 해주셨다. 그게 참 신기했고 아직까지도 얼떨떨하다.


그렇게 촬영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복귀를 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정말 신기했고 너무나도 멋진 모습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동기부여가 아주 조금 된 것 같다. 저렇게 열심히 살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살아가는 것을 후회하지는 말자라는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뭐 얼마나 열심히 살았다고 이런 생각이 드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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