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올바른 길, 남들이 사는 반복된 길을 가라고 말하는 걸까. 너는 이렇게 태어났어도 남들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해야 해, 너는 안정적이고 평탄한 삶을 살아야만 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고 자랐던 것 같다. 그런 일이 비단 나에게만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이고 그런 강요를 암묵적으로 당해왔던 것 같다.
대체 일반적인 삶이라는 것이 뭘까. 정상적인 삶이라는 것이 뭘까.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지 않았다. 지금 당장 표현할 수 있는 말들 중 고르라고 한다면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존재'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나 아빠나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었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공부 좀 해라 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대치가 없던 건지 아니면 내가 뭐라도 했으면 좋겠어서 조급하게 몰아세우지 않았던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사업을 했다. 그 전의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20년 가까이 되는 시간들을 회사에서 영업맨으로 살아오다, 도저히 맞지 않아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만 들었다. 그런 걸 보면 나도 아빠를 닮은 것 같긴 하다. 나도 적지 않게 아니 오히려 많은 방황을 해왔었다.
짧게는 하루, 반나절만에 너무 일이 맞지 않아 스트레스가 극심해져 몰래 도망쳤던 적도 많고 길게는 9개월, 11개월까지 일을 해봤다. 심지어 11개월은 대기업 백화점의 부속건물에서 일을 했었는데 퇴직금을 주는 게 어렵다고 1년이 아닌 11개월만 계약을 했었다. 그때는 그냥 일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그것도 어디냐며 감사하다고 고개를 조아리며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뒤 술안주로 이야기를 대신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쓰레기라는 말부터 악덕기업이라고 불매하겠다, 이용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했었다. 오히려 화를 내야 할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저렇게까지 열을 낼 일인가.. 지나간 일인데.. 하면서 내 앞에 놓인 술을 마셨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내 잘못이겠지 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황급히 꺼내본다.
그렇게 나는 방황을 밥 먹듯이 했고 회사와 나는 맞지 않아!라는 말로 가족들에게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항상 심어주게 됐고 그 기간이 몇 년이 지나고 거의 반 평생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가족들마저 나에게 등을 돌리곤 했다. 네가 뭘 할 줄 알아, 그만두기나 할 줄 알지-하며 나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나 자신이 회사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오랜 시간 체감했기 때문에 알바를 하게 된 순간부터 남몰래 다니면서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
엄마 : 어딜 그렇게 나가? 일 구했어?
나 : 아니 못 구했지 연락이 안 오더라고
엄마 : 근데 매번 그렇게 어딜 나가?
나 : 아니 그냥 친구도 보고 공부도 하고 그러려고..
엄마 : 일 못 구했는데 집에 있는 게 눈치 보여서 나가는 거면 그러지 마. 가족이 남도 아니고
나 : 그런 거 아냐 진짜 나갈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엄마 : 알겠어 돈 필요하면 말하고 잘 다녀와!
라는 대화를 몇 개월에 한 번씩은 비슷한 패턴으로 나누었던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저런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아침 8시였나 9시부터 집을 나와서 이리저리 방황을 했고 결국 도착한 곳은 아침 일찍부터 여는 카페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해서 가장 구석자리에 앉아서 뭐라도 해보려고 공책도 꺼내고 핸드폰으로 알바도 찾아보고 하지만 이내 금방 포기하고 엎드려서 잠을 잤다. 주변의 시끌벅적한 소리에 깨니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카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구석진 곳에서 엎드려 잠을 잤던 나는 나 자신이 그러고 있는 것이 민폐라고 생각해서 카페에서 허겁지겁 나와 pc방으로 향했다. 아침밥도 못 먹고 나온 나는 pc방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라면을 시키고 먹고 알바를 또 강박에 쫓겨 찾아보다 또다시 엎드려서 잠에 들다가 불편한지 뒤로 누워서 자다가 그렇게 4시가 되니 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모든 의욕이 떨어지고 의지가 사라져서 집으로 갔다.
사실 글을 쓰다 보니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나간 게 아니라 일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쳤기 때문에 그렇게 강박적으로 집을 나섰던 것 같다. 물론 친구 만나고 할 일이 있다고 나온 적도 있지만. 그런 것이 쌓여서 나도 엄마를 믿을 수 없고 엄마도 나를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린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집안의 큰 흔들림으로 엄마도, 누나도, 나도 어찌어찌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태어나서 이 나이까지 자라면서 엄마가 교회가 아닌 외부활동을 하는 것을,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처음 봤다. 엄마는 4-50년 동안 가정주부로서 살아와서 세상 밖으로, 집 밖을 나서는 것을 너무 무서워했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엘리스 보이드 레드 레딩 (모건 프리먼)을 보는 듯했다. 작중 레드는 오랜 시간 수감생활을 하고 가석방 심사를 몇 번이나 받게 되는데 번번이 탈락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귀찮게 하지 말라는 식으로 솔직한 심경을 토로하자 그제야 심사원들은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가 마쳤다고 판단이 들어 가석방 심사를 통과시켜준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된다. 레드 이전에 브룩스라는 인물은 가석방 심사를 받아 세상으로 나갔지만 수감소에 너무 오래 있었던 탓인지 급변한 세상에 적응을 하지 못해 목을 매달아 최후를 맞이하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세상 밖으로 한 발자국 걷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대변해주는 것과 같은데 나와 엄마는 나름대로 어찌어찌 잘 버텨내는 것 같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온 엄마지만 이럴 때는 엄마가 기특하고 용감하다. 엄마도 그렇게 힘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닐 텐데. 늘 감사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무너져도 조금은 다른 길로 돌아가도 괜찮을 것이라는 안정감이 생긴 것 같다. 돌아가도 괜찮다. 쉬어가도 괜찮다. 길이 아닌 곳을 걸어도 괜찮다. 어느 곳이어도 상관없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해결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지나갈 것이다.
괜찮다.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