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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Feb 16. 2024

난 왜 강아지에게 진심이 되었을까

우리 집에서 처음 키웠던 시츄는 자세히 언제부터 강아지를 키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기억으로는 15년 이상 살았으니 2000년대 초중반부터 키웠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이름이 생생한 초롱이를 키우게 되었다.


단순히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을 때라서 내 앞가림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생각을 했었던 시절이었다. 유치원을 시작해 초중고를 사립으로 다녔던 나로서는 같은 반 학교 친구들의 부모님 치맛바람을 견뎌내야만 했었고 (사실 나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우리 부모님이었다.) 나 역시 또래 친구들에게 은근한 무시를 당하면서 지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가슴 한편에 박혀있는 충격적인 일은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기 얼마 전에 갑자기 선생님이 큼지막한 흰 종이를 가져와서는 5-6명씩 짝지어 앉아있는 테이블에 하나씩 놔주셨고 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이 반에서 같이 생활하던 친구들과는 뿔뿔이 헤어질 수 있어서 롤링페이퍼를 각자에게 써주자는 말이었다.


졸업식 이전에 할 수 있는 가장 유의미한 행사였다고 생각했다.


나랑 같은 테이블에 속해있던 소위 이쁘고 친구가 많고 잘 나가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무 내색도 하지 않으면서 하하 호호 떠들면서 쓰고 있었다. 물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그 커다란 흰 종이에 진심 어린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받을 차례가 되어서 손으로 받고 펼쳐보았는데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 롤링페이퍼에 쓰여있던 내용들 중 몇 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어색한 사이의 친구관계에서 할 수 있는 미적지근한 쓸모없는 말들이었고 그중 아직까지도 나에게 충격을 줬던 것은 그 이쁘장한 여자아이의 말이었다. 보일 듯 말 듯 한 하늘색과 파란색의 희미한 색상의 펜으로 종이의 가장 끄트머리에 작게 썼던 것까지 기억이 난다. 사실 나도 그 친구가 무슨 말을 썼을지 굉장히 궁금했기 때문에 허겁지겁 읽어봤다.


"안녕 ㅎㅎ 난 너랑 안 친해서 쓸 말이 없는데 선생님이 쓰라고 하니까 썼어. 너도 나한테 할 말 없는 것 같으니까 졸업 잘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느낌의 말투였다. 어렸던 나는 그 당시에 1. 친하지 않은데 2. 선생님이 쓰라고 해서 억지로 3. 할 말 없는 것 같으니 라는 단어들이 그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그 이전인지 이후인지 잘 모르겠지만 정서적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왜냐면 강아지를 키운 이유는 정서적으로 불안해진 나를 보고 아빠가 초롱이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 정말 예상하지도 못했고 하루아침에 늦은 저녁 학원을 다녀오니 아빠가 아주 작고 소중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오셨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우리 아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해서 한 마리 데려왔어"라고 말했을 리 만무했고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강아지를 키우면 조금이나마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그렇게 키우던 초롱이는 15년 이상을 살다가 암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초롱이를 데려온 건 아빠였고 애가 암에 걸리고 백내장까지 같이 와버려서 방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간 건 부모님 두 분이셨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산책도 귀찮다는 말로 많이 해주지도 않았고 그때 당시에는 강아지를 위한 물건들이 정말 많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 먹는 밥이나 나물 같은 걸 한 번씩 주곤 했었는데 그 이후로 사료를 먹지 않아서 매번 고구마를 삶고 사료를 물에 뿌려서 간식이랑 같이 주는 수밖에 없었다.


아빠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우리는 키울 능력도 안되는데 너무 섣불리 데려왔다는 말을 항상 했고 그 말이 아직까지도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탓인지 지금 여자친구가 키우는 강아지에게 너무 과몰입해서 키우고 있다. 외출을 해야 할 때는 이 아이가 너무 걱정스러워서 혼자 두는 게 항상 마음에 걸렸고 혼자 두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 혼자 있을 시간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판단이 서질 않는다.


초롱이의 사태를 한번 겪었기 때문에 두 번째 키우는 이 아이에게 너무나도 몰입이 되어가고 있고 마치 내 자식을 키운다는 마인드로 바뀌어버린 것 같다. 키우는 즐거움도 많지만 분명 속상한 일도 많다. 그럴 때마다 초롱이를 떠올리면 사실 미안한 마음만 든다.


무지개 동산에서 잘 지내고 있으려나. 초롱이는.



초롱아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친구들이랑 잘 뛰어놀고 행복해야해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네 생각이 많이 난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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