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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Mar 10. 2024

누구를 닮았는지 자존심만 세서

정말 나는 누구를 닮은 건지 모르겠다. 엄마와 아빠 두 사람 모두 자존심이 강하다는 걸 느껴본 적은 없다. 가끔은 비교적 옛날 사람들이기 때문에 생각이 고리타분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긴 했지만 그게 자존심이 강하다는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그저 옛날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느끼지 못하고 다양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뿐이라고만 생각했다. 돈이 많은 집이 아니기 때문에 겨우 벌어 겨우 네 가족이 먹고살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고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내가 기억나는 것은 아빠가 혼자 인쇄업을 하시면서 하청을 받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일하면서 돈을 혼자 벌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몇 십 년 동안 주부였고 할 수 있는 게 음식과 집안일뿐이었다. 그렇게밖에 못하는 엄마의 능력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하고 밥 차리고 끝도 없는 집안일을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다.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로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하고 가족들 먹일 반찬을 만들고 한다는 행위가 너무 어렵다는 걸 느낀다. 나는 시장에 가서 저렴하게 많은 양의 야채를 사거나 오래 먹을 수 있는 반찬들을 고민하는 것 자체를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2-3일 먹을 양의 라면을 산다던가 국물 밀키트를 사서 대충 햇반에 밥을 해 먹는 것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이유들로 엄마도 아빠도 자존심이 센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아빠랑 같이 일을 잠깐씩 할 때는 이따금도 느끼지 못했다. 단순히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자존심을 무너뜨린 건지 뭔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완벽한 을의 입장에서 일을 받아오는 입장이라 아무 내색도 못하는 거였을까. 일을 주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자 주말에도 나가서 운전을 해주고 반찬을 사다 주고.. 그런 걸 생각해 보면 아빠도 참 괴로웠고 고통스러웠겠구나 싶다.


나는 자존심이 세다. 고집이 세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닌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니고 대충 얼버무려 넘어가는 경우도 많이 없다. 그리고 비합리적인 것을 보면 진절머리가 나고 예민한 탓에 음식점에서 말도 안 되는 응대를 받으면 음식이 아무리 맛이 있더라도 기분과 마음이 이미 한껏 상한 상태로 나온다. 그리고 한동안 그 감정을 끊어낼 수 없어서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곤 한다. 그런 걸 보면 나는 화도 많은 것 같고 짜증도, 예민함도 도를 넘은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불합리한 것을 보면 너무나도 화가 나고 참을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이미 고여있다 못해 썩어있는 생태계 안에서 갑질을 하고 그 갑질이 눈에 보이지라도 않으면 원래 이런가 보다 생각하고 넘길 수 있는 것들도 너무 눈에 띄게 부조리를 벌이니까 이 생태계 안에서 살아남는 건 돈을 버는 상위 몇 명만 벌고 나머지 중간을 포함한 아래 신규 인원들까지 모조리 피해를 볼 수 있는 생태계가 되어가는 게 너무 싫고 토악질이 나온다.


지금도 너무 화가 나고 짜증 나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 때문에 더 일을 하기 싫어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자존심이 센 건지 아니면 불합리한 것들을 못 참는 성격일 뿐인지 모르겠다. 나를 포함한 남에게 일말의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런 모습들이 더 싫어진 것 같기도 하다.


나만 피곤하고 나만 피해보고 나만 돈 못 버는 거지 뭐. 남들은 알게 모르게 뒤에서 다 일을 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랑하고 잘 보이고자 아부하고 똥꼬나 빨고 있겠지.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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