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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Apr 17. 2024

점점 인생을 놓게 되는 것 같다

늙는다는 것이 이렇게나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던가. 다른 사람들은 늙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도무지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허리가 몇 달 동안 지속적으로 아파서 어제는 정형외과를 다녀왔다. 엑스레이 상으로는 문제가 없고 척추가 조금 휘었을 뿐,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느끼는 통증이 생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검사 결과를 듣고 실비 보험이 있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실비 보험은 가지고 있다고 대답을 하니 체외충격파를 포함한 물리치료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한번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해서 요청드렸다. 나는 2016년부터 아빠의 가입으로 실비보험에 특약이 들어있는 보험을 들고 있었는데 워낙 몸이 아프지 않았던 사람이라 실비보험을 이른바 빼먹지를 못했다. 병원에 가서 비용을 청구하는 방법도 몰랐고 그렇게 청구하면 돈이 나온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2개월 전에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약 처방받은 것을 토대로 서류를 제출했더니 비용이 15,000원이 되지 않는다고 반려당한 이후로 처음으로 돌려받았다.


정확히는 10만 7천 원을 결제했고 8만 9천 원가량이 입금되었다.


진작 이런 방법을 알았으면, 이렇게 빼먹을 수 있는 돈들이었더라면 아프지 않더라도 병원에 가고 주기적으로 피검사를 받고 내 건강상태를 확인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런 쪽으로는 가족들 아무도 모르기에 거진 8년이란 세월을 9만 원씩 돈을 하늘에 뿌리고 살았던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원통해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내과도 다녀오고 정형외과도 다녀오고 앞으로는 정신과도 다니면서 알코올 중독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데 두려움이 앞선다. 내과에서는 간 기능 이상, 고지혈증, 고혈압 의심이라는 말을 했다. 그런 말들을 듣고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다. 나에게는 "이제 당신은 늙을 대로 늙었으니 그동안 20대 때 즐기고 누렸던 것을 절대로 금지하시오. 그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금방 죽을 것이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더 인정하기가 싫다.


물론 20대를 지나면서 건강관리는커녕 안하무인으로 놀고먹고 돌아다니기만을 했다. 심지어 치과에서도 충치가 몇 개 있는데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60만 원 정도가 나온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그 이후로 치과를 가고 있지는 않다. 월세 내기도 바쁜데 치과 치료를 받을 돈이 있었을까. 정말 몸이 하나 둘 고장 나기 시작하면 연쇄반응으로 주변의 모든 것이 고장 나는 것 같다.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막상 현실적으로 이렇게 문제가 생기고 아프고 몸이 삐걱거리고 살쪄서 볼품없는 내 모습을 보니 금방이라도 삶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제의 잠자리에는 엄마가 죽는 꿈을 꾸었다. 외부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전화로 소식을 듣고 오열한 내 모습을 보고 그 꿈을 꾸자마자 현실에서도 잠깐 깨서 숨을 가쁘게 내쉬던 것까지 기억이 난다.


늙는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인 것 같다. 나는 아직까지도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이기 싫다. 30대인데 벌써 간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인정하기가 싫은 걸까.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도 마시고 있는 나도 등신인 것 같고 술을 먹지 않으면 인생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도 등신인 것 같다.


나는 정말 하루아침에 간 때문에 즉사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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